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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청설모의 아찔한 횡단

 

청설모가 4차선 도로를 가로질러 길섶으로 사라진다. 신호를 받아 달리던 승용차가 움찔 놀라 급브레이크를 밟는다. 자동차의 경적에 놀란 듯 청설모의 움직임이 더 날쌔다. 버스를 기다리던 승강장의 사람들이 놀라 청설모 쪽으로 시선을 집중시킨다.

거리에서 납작해진 죽음들을 보는 일이 흔하다. 고양이부터 시작해서 개, 뱀, 야생동물의 죽음을 목격하게 된다. 산을 깎아 개발을 하다 보니 거처를 잃은 날짐승들이 거리로 나와 무참한 죽음을 맞는 것이다.

어느 해인가 인근 마을의 야산을 깎아 물류단지 공사를 시작하자 뱀이 동네로 숨어들어 마을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 자고 일어나보면 신발장에 뱀이 똬리를 틀고 싱크대에서도 심지어는 장롱 밑에서도 뱀을 만났다. 놀란 산모는 유산했고 사람들은 저녁이 되면 밖에 나가는 것을 꺼렸다. 장화를 신고 동네를 나가야 했고 텃밭에서, 애호박을 따다 뱀에 물리기도 했다. 사람들의 공포심만큼이나 거처를 잃은 야생동물들도 불안했을 것이다.

생태계의 파괴는 인간과 동물 모두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남긴다. 올해는 유난히 큰 사건 사고가 잦았다. 우면산 산사태, 젊은 청춘들을 앗아간 춘천의 펜션 붕괴 등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지구촌의 기상이변과 맞물린 개발의 흔적들이 인재와 천재라는 미명하에 우리를 불안에 떨게 하고 있다. 물론 감당하게 어려울 만큼의 폭우도 내렸지만 설마 하는 방심과 무방비가 더 큰 재앙을 불러들이고 있다. 유원지나 경관이 좋은 곳에 가보면 펜션이나 음식점 등 업소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그 뒤론 산을 깎은 절개지의 붉은 속살을 감추며 풀이 자라는 것을 흔히 보게 된다. 나는 아니겠지 하는 마음이 돌이킬 수 없는 재앙으로 다가온다. 자연재해 앞에서 천재이냐 인재이냐 하는 다툼은 이제 의미를 상실해가고 있다. 지킬 건 확실하게 지키고 개발을 하면 뒤 마무리를 철저하게 해서 무고한 생명을 잃는 일이 발생해서는 안 될 것이다.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야생동물 출현이 잦은 구역이니 속도를 줄이고 안전운전 하라고 네비게이션의 여자가 연실 안내를 한다. 도로를 내고 야생동물의 통로를 만들어 주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함이 많은가 보다. 새끼들을 데리고 거리를 가로지르는 동물, 길에서 서성이다 자동차 경적음에 놀라 자동차 앞 유리에 부딪히곤 놀라 달아나는 꿩 등 수렵을 금지하다 보니 개체수가 늘어난 이유도 있을 테고 먹을 것이 부족해서 인가로 내려오다 보니 이런 일들이 많아질 수도 있다.

자연과 공존하는 세상 서로 지키고 보살피는 세상이 필요하다. 야생의 것들은 야생에서 살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마음이 필요하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개발과 단단한 마무리 작업으로 더 이상 소중한 인명과 재산 피해가 없도록 서로 노력해야 한다.

나하나 쯤이야 하는 이기심보다는 나부터, 나라도, 하는 마음이 서로 모인다면 몰아치는 자연재해 앞에서 피해를 최대한 줄이고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거리에서 만나는 납작한 죽음과 그 흔적들 앞에서도 조금을 덜 미안해도 될 때까지 우리의 자연 환경을 스스로 지켜야 할 때이다.

/한인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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