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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반성하는 마음으로

 

내려놓고 싶었다.

어깨를 짓누르는 일상의 무게를.

흔한 주 5일 근무도 실천하지 못하는 직장을 홀가분하게 벗어 토끼전 토끼 간처럼 바위에다 내다 말리고 싶었다. 여름 햇살에 바싹 마른 그 비릿한 새로운 날들을 보송보송한 홑이불인양 다시 끌어당겨서 내 것으로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내 8월의 여행은 그렇게 시작됐다. 여행 이틀 째 경북 청송의 아름다운 푸르름에 푹~빠져 여행을 하던 중 청송군 안덕면 신성계곡에 있는 방호정을 찾게됐다. 조선 광해군 때 방호 조준도가 어머니 무덤이 바라보이는 신성계곡의 언덕에 정자를 지었는데 어머니를 생각하는 뜻에서 사친, 또는 풍수당이라 불렀다 한다.

길안천을 고고히 흐르는 물길을 바라보며 우아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는 방호문집의 판각이 보관돼 있다.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51호인 방호정 길안천을 건너 방호정으로 이어지는 방호교는 누가 보아도 방호정과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다. 현대식 다리로 방호정의 우아한 자태와는 사뭇 다른 아주 어색한 모습이라 당황스러웠다. 옛 선비들이 모여 학문을 논하였다는 그 방호정을 가까이 가 보았을 때 옆으로 작은 식당이 있고 그 식당에서 내어놓은 평상에선 몇몇 손님들이 식사중이라 방호정 표지판은 마치 초라한 객처럼 한쪽으로 비켜서 있는 것 같았다. 방호교를 건너면서부터 들리던 취객들의 노래소리는 방호정을 둘러보는 내내 점점 더 크게 왕왕 거렸다. 청송 8경 중 하나인 신성계곡과 방호정에 대한 기대가 컸기에 방호정의 주변 분위기와 보존 상태를 보고 기대만큼이나 큰 실망을 하고 말았다.

길안천에 돗자리를 깔고 죽 늘어선 피서객들의 모습이야 여름 한 낮의 또 다른 방호정 풍경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으나 방호정에 붙어 있는 식당에서 들리는 음주가들의 비틀거리는 노랫가락은 방호정을 더없이 서글프게 만들고 있어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소중한 민속자료가 몇몇 사람들의 놀이문화에 끼여 몸살을 앓고 있는 듯해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던 것이다. 놀이란 즐거움을 얻기 위해 자발적으로 하는 모든 활동을 칭하는 말인데 우리가 흔히 놀이문화라고 하면 여럿이 함께 어울려 할 수 있는 것들과 혼자서 하는 것으로 구분 할 수가 있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여럿이 함께 하는 놀이문화를 즐겨하였는데 농촌에서는 철따라 꽃놀이, 단풍놀이도 가고 윷놀이, 줄다리기 등을 하며 여럿이 어울려 이웃끼리의 친목을 도모하기도 하였다. 물론 그 놀이 문화도 시대에 따른 변화를 거쳐 요즘은 각종 매체를 통해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끼리 동호인 모임을 만들어 산행이나 스포츠 또는 장기, 바둑등 다양한 놀이 활동을 하기도 한다.

그런 어른들의 놀이문화에는 감초같은 역할을 하는 술을 쉽게 볼 수가 있다. 술이 빠진 놀이문화를 마치 주인 없는 잔치처럼 또는 맹물같이 싱겁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 술은 놀이의 흥을 돋우어 분위기를 더욱 화기애애하게 하는가 하면 자칫 잘못하면 주위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가 있어 특히 조심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였다. 물론 일상의 무게를 홀가분하게 털어내고 싶은 마음에 연세 있는 분들이 모처럼 바깥놀이에서 친분 있는 사람들과 어울려 하루쯤 음주가무를 즐기는 걸 탓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때와 장소를 가려야 한다는 생각을 해 봤다. 우리의 민속자료를 진심으로 아끼는 마음으로 이곳을 찾게 될 방문객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 선조들이 남긴 귀한 자료를 보호해야 할 의무를 지닌 후손으로서의 죄스러운 마음이 엄습해왔다. 방호정에서 술을 파는, 방호정이 떠내려가도록 질러대던 그 부끄러운 가락들이 마치 짐승처럼 달려드는 것 같아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가야 했다.

/이상남 평택문협 회원·독서 논술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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