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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엄마와 딸, 딸의 엄마

 

필자가 어릴 적, 학교에서 돌아오면 나를 반기는 사람은 늘 할머니였다. 아이의 부모가 된 지금은 할머니께 감사한 마음뿐이지만, 그 시절 어린 마음에는 엄마가 서운했다. 다른 친구들처럼 나도 엄마가 반겨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당시에는 맞벌이가 그다지 보편적이지 않아서였던지, 전업주부 엄마를 둔 친구들이 부럽기만 했다.

좀 더 크고 나서는 어머니를 이해하게 됐고, 어머니께서 당신의 이름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이 좋았다. 그리고 지금 나의 어머니는 내게 있어 가장 좋은 조언자이자 친구이다.

기억을 떠올려보면, 시부모님을 모시면서 직장을 다녔던 내 어머니는 늘 바빴다. ‘난 절대 엄마처럼은 살지 않을 거야’라고 외치던 사춘기 딸은 이제 엄마가 되었고, 또 그 때의 어머니처럼 직장을 다닌다. 그 당시는 어머니의 희생이 마냥 당연한 일인 줄 알았는데, 막상 내가 그 자리에 서고 보니, 어머니의 인생이 달리 보인다. 그러면서 좀 더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려 보게 된다.

물론 어머니가 나를 키우던 때와는 많은 여건들이 바뀌었다. 그때보다 생활은 좀 더 편리하고 풍요해졌고, 여성의 사회활동에 대한 인식도 달라졌다. 그리고 집안일이 여성의 전유물이라고 말하는 ‘용감한 사람들’도 이제는 많이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가사노동과 육아는 여성의 몫인 경우가 많은 것이 현실이다. 특히 육아는 온전히 엄마의 책임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은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일을 하는 많은 엄마들이 직장 때문에 자녀와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갖는 경우가 많다. 아이가 정서적으로 결핍을 느낄까봐 특히 신경을 쓰게 되는데, 이는 애착의 문제로 볼 수 있다. ‘애착(attachment)’은 볼비(Bowlby)라는 학자가 처음 주장했는데, 주 양육자와의 애정적인 유대적 관계를 의미한다. 안정적인 애착관계가 형성되면 자신을 신뢰할 수 있고 필요하면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애착은 생애 초기의 단계에서뿐만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는 하나의 큰 틀을 제공하는데, 많은 학자들은 어린 시절에 형성된 애착이 전 생애적으로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그렇다면 전업주부인 어머니를 둔 아이들이 직장에 다니는 어머니를 둔 아이들보다 안정적인 애착관계를 형성할까? 정답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애착은 양육자와 아이가 함께하는 시간에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일관된 양육방식과 얼마만큼 질적으로 좋은 시간을 보내는가가 관건이다. 짧은 시간이라도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동안은 아이의 욕구를 읽고 애정표현을 충분히 해준다면 시간은 짧아도 아이는 안정적인 애착을 형성할 수 있다. 행복하지 않은 마음으로 어쩔 수없이 아이와 하루종일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즐거운 마음으로 아이에게 집중하는 한 시간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 애착의 형성 대상이 어머니여야만 좋은 애착관계가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어머니가 아니라도 일관적이기만 하다면 아버지나 다른 주변인을 통해서 아이는 안정적인 애착을 형성하는 것이 가능하다. 필자는 직장을 다니는 어머니의 딸이었지만 그 누구보다도 안정적인 애착관계를 형성했고, 또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자부한다. 물론 이러한 행복의 기반에는 절대적으로 엄마의 희생과 노력이 뒷받침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다만 그때로부터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에도 여성들의 일-가정 양립이 여전히 힘든 현실이 슬프다. 그렇지만 직장을 다니는 우리 엄마들에게 쉽지는 않겠지만 상황을 받아들이고 즐겨보자고 건의하고 싶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고 하지 않는가. 물론 직장을 다니면서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전혀’ 들지 않는다고 자부할 자신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러했듯이 시간이 지나면 내 딸도 엄마의 인생을 이해하고 존중해줄 거라고 믿는다. 고백하자면 아이를 낳기 전에는 그다지 아이에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보니,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특별해보이기 시작했다. 엄마에게 가장 특별했던 딸이 이제는 가장 특별한 딸의 엄마가 되었다.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가면 오늘도 내 딸아이는 까르르 웃으며 뛰어와서 반갑게 나를 맞아줄 것이다. 내겐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내 딸아이의 웃음소리가 오늘도 나를 행복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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