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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꿈은 덧없는 바람이 아니다

 

꿈은 내 삶의 자양분이었다. 꿈은 절대로 허상이 아님을 알게 됐다. 나는 젊은 날 꿈이, 온 몸짓으로 세상의 애환을 표현하는 무용가가 되고 싶었다. 무용은 활동적이고 율동적이다. 동적(動的)으로 사람들을 흥겹게 해주고 활기를 준다. 인간 내면의 고뇌와 이야기들을 육체의 움직임을 통해 감명 깊게 보여준다. 무용가가 되고 싶다고 해서 꼭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여자로서 걸어야할 길이 그 꿈을 열어주지 않았다. 결혼 후 아내로서, 엄마로서, 며느리로서 소임에 온 몸을 풍덩 담그고 살다보니 어느새 중반을 훨씬 넘어섰다. 나이가 들수록 꿈을 가지며 살아야 하지 않는가. 2002월드컵 당시, 온 국민들에게 희망을 준 캐치프레이즈가 ‘꿈은 이루어진다’였다. 그 구호는 내 가슴을 쿵쾅거리게 했다. 그 때 대한민국 축구가 세계4강에 오르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8강이 목표였으니까 말이다. 그 구호가 강렬한 에너지가 되어 선수나 응원하는 국민들의 마음속에 깊게 각인된 탓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때 나는 내 꿈도 꿈으로 끝나지 않고 이룰 수 있겠다는 자극을 받았다. 이제껏 내 마음 속 깊이 파묻어두었던 무용을 시작하기로 했다. 무용은 감정을 표현하는 육체의 언어다. 반드시 최선을 다해 젊은이들 못지않게 이루겠다고 몇 번이고 다짐하였다. ‘불타는 열정’이 가슴에 지펴지면 인생이 달라진다고 했지 않은가. 늦은 나이에 시작하려니, 남의 눈에 어떻게 비칠까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애초에 염두에 두질 않았다. 속된 말로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나를 두고 한 말인 듯 하다. 먼저 좋은 무용스승을 찾아 나섰다. 당시 학원을 운영하던 무용학과 교수를 만나 젊은 날 꿈꾸어오던 무용을 시작하고 싶다고 한 것이 단초가 되었다. 전례무용과 한국무용을 하면서 신명이 날 때도, 어려울 때도 있었지만, 늘 열정으로 스스로를 격려했다. 나의 열정이 마음속 간직한 꿈을 현실로 만들어 줄 것이라고 믿었다. 특히 학부 출신의 무용가만을 원할 때는 결혼을 안 하고 계속했더라면 하는 마음과 함께 눈물이 나도록 서러웠다. 그럴수록 부족한 부문을 더 배우기 위해 극성을 떨었다.

배움터는 수원뿐만이 아니다. 서울 강습소를 찾아 전통가락에 맞는 ‘우리춤체조’를 배웠다. 지도자과정까지 이수하여 남을 가르칠 수 있는 자격증도 취득했다. 같이 배우던 사람 가운데에서 내가 비교적 나이가 많은 측이었다. 자격지심도 있었지만 꼭 이루겠다는 일념으로 배웠다. 그럴 때마다 가슴이 뜨겁게 뛰었다. 꿈은 노력 없이 거저 안겨주는 것이 아니다. 열정과 의욕이 없으면 빛을 발하지 못한다. 어느 날 연습실에서 그간 무리한 탓인지, 발목을 크게 다쳐 한동안 쉬게 되었다. 그간 든든한 후원자요 버팀목이던 남편으로부터 ‘여보, 이 나이에 무슨 무용이요, 당신이 국가대표가 되려고 그래요?’ 이제까지 없던 과격한 표현으로 핀잔을 주었다. 오히려 그 말이 나에겐 자극이 되어 무용에 대한 열정을 불타게 했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사그라지지 않는 열정을 간직하겠다는 욕구가 새록새록 솟았다. 나같이 부상을 입는 경우는 흔한 일이다. 이 때 많은 이들이 중도에 포기하고 만다. 난 그것이 계기가 되어 재활치료과정을 밟게 되어 웬만한 부상은 만질 수 있을 정도로 자격증까지 받았다. 지금은 자치센터, 노인대학 등에서 이제껏 배운 전통무용에 바탕을 둔 우리춤체조를 가리키고 있다. 짧은 삶을 살아오면서 꿈은 꿈으로 끝나지 않고, 자신의 노력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현실로 나타나게 할 수 있다고 믿게 한 삶이었다. 나는 내가 자랑스럽다. 그것은 소박한 꿈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꿈은 결코 덧없는 바람이 아니었다.

/김현옥 (무용가·우리춤체조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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