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NGO칼럼] 오래된 양육비 청구

 

법원으로부터 조정의뢰 내용이 왔다. 6년 정도의 결혼생활과 5년 정도의 별거 끝에 협의이혼 했던 사건으로, 15년이 흐른 지금 자녀 둘은 모두 성장하여 성년이 되었는데 그동안 양육비를 받지 못했으니 소송을 청구한다는 취지의 내용이었다. 청구이유를 읽어 내려가며 세월의 무게에 비해 달랑 한 장으로 간단하게 정리되어 있는 것이 의아하기 까지 했다. 보통은 서너 장에서 수십 장에 걸쳐 왜 소송을 하게 되었는지 구구 절절하게 쓰여 있으나 이렇게 간단하게 적혀 있는 것은 처음 보았다.

조정에 임할 때 주문처럼 하는 말이 있다. ‘법원에 오기 까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고생이 많았다’는 이야기를 진심으로 건넨다. 원고이건, 피고이건 내게는 모두 갈등의 당사자로서 삶의 힘겨움을 온몸으로 부딪히며 여기까지 왔을 터이니 잘잘못을 떠나 힘겨웠을 거라는 마음의 위로를 먼저 한다. 이때 당사자들의 반응에 따라 갈등의 진행정도와 갈등상황을 가늠할 수 있다. 반응이 격렬하게 나오면 갈등은 아직도 첨예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각자의 자리에 앉아 말없이 고개를 떨구고 있다. 아마도 6년 전 양육비를 주겠다고 각서를 썼던 이후 처음인 모양이다. 협의이혼 이후 남편은 곧바로 재혼을 하여 가정을 꾸렸으며, 아이는 없었다. 두고 온 아이들에게 죄책감이 들어 낳지 않았다고 했다. 아내는 두 아이를 데리고 열심히 살았으나 여러 가지 어려움 끝에 이혼 8년 째 되는 해에 양육비 지급을 요구했으며, 전 남편은 지급하겠다는 각서를 썼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았는지 지급이 안 되었고, 그 사이 아이들은 미성년에서 성년으로 성장하였다. 두 사람은 갈등당사자 답지 않게 매우 침착하고 정리되어 있었다. 세월의 흐름이 그들로 하여금 갈등으로부터 좀 더 자유로운 마음을 갖게 한 것일까? 대부분의 양육비 신청은 남편에게 아버지의 역할을 하게하는 물적인 책임선이기도 하다. 간헐적으로는 법적으로 이혼이 되었으나 심리적으로 이혼이 안 되어 “아버지란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며 진행되기도 한다.

조정 들어가기에 앞서 조심스럽게 양해를 구하며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에 와서 양육비 신청을 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물어 보았다. 두 아이를 책임 진 전 아내는 천천히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혼 이후 아이 둘을 키우며 부담이 많이 되었다고 한다. 먹고사는 것은 그럭저럭 할 수 있었는데, 큰아이가 이혼 몇 년 뒤 희귀병에 걸려 자주 병원을 다니게 된 것이 힘들었고, 최근 둘째가 대학에 들어가면서 등록금등 더 이상 혼자서 감당하기 어려워서 하게 됐다고 한다. 그러면서 전 남편도 가족을 이뤄 살기 때문에 어려울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딸아이의 희귀병은 어쩌면 평생을 엄마가 돌봐야 할이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경제적 힘겨움이 늦은 양육비 청구를 하게 되었노라며, 전 남편에게 약간의 미안함도 표시한다.

전 남편은 큰 아이를 통해 전 아내가 사는 모습을 듣고 있었으며, 마음이 아프고 가슴이 아팠다고 했다. 그러나 현재 결혼생활을 하고 있어 도움을 줄 수 있는 처지가 아니어서 미안한 마음 있었다고 했다. 이제라도 벌어서 도움을 주고 싶다고 했다.

청구되었던 양육비는 1억 정도의 금액이었다. 양육비 신청을 하게 된 이유를 듣는 사이 자연스럽게 지급하겠다는 말과 어떤 방법으로 지급받길 원하는지 이야기가 되어, 매월 백만원씩 80개월을 지급하는 것으로 조정되어 정리되었다.

두 분은 서로에게 진작 양육비를 주지 못해 미안했다는 말과 어려울 텐데 양육비 신청을 하게 되어 미안하다는 말로 세월의 힘겨움을 녹여냈다. 끝으로 애들을 위해서라도 건강했으면 좋겠다며 중년의 전 아내는 눈물을 흘리고, 아이들과 자주 통화하고 싶지만, 아버지로서 자격 없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어 전화도 못하겠다며 붉어진 눈시울로 고개를 떨군 전남편.

쉽지 않았던 다른 양육비 조정에 비해 너무 빨리 마무리 되니 오히려 내가 긴장이 풀린 조정이었다.

/김미경 갈등조정 전문가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