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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리더] 조갑용 명인 "전통藝人과 풍물 재발견”

도국악당서 내달 24일 ‘명인을 만나다’ 특별기획 공연
사물·영남성주굿·아쟁·태평소 등 7가지 기예 선봬
“전통음악 소외되는 현실 안타까워…풍물사랑 앞장”

 

어떤 사실이나 가치를 다시 새롭게 발견해 인정하게 된다는 단어인 ‘재발견’. 최근 음악계에서 ‘재발견’이라는 단어가 크게 부각되고 있다. MBC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 KBS 프로그램 ‘불후의 명곡’ 등이 이러한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를 통해 좋은 한국가요들뿐 아니라 가창력이 뛰어난 가수들이 재발견되고 있다. 경기도립국악단 사물·타악악장 조갑용(58) 씨를 만났을 때도 이 단어가 문뜩 떠올랐다. 그의 재능적인 부분이나 국악단 내 현 입지 면에서는 ‘재발견’이라는 단어가 필요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최근 예술계의 흐름이나 추세 면에서는 ‘재발견’이라는 의미를 통해 부각되는 것도 도립국악단과 개인적인 면에서 큰 무리가 없어 보이리라는 판단이 든다. 예술은 튼튼한 기초를 바탕으로 아름다움과 각 장르의 고유의 멋을 살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중적인 취향과 인지도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6살때 부친에게 풍물을 배우기 시작, 환갑을 바라보는 지금까지 50여년 동안 풍물과 함께 동고동락해 온 조갑용 명인. 그가 경기도국악당이 지난 4월 경기민요의 대가 이춘희 명창을 시작으로 가야금 황병기 명인, 판소리 신영희 명창, 사물놀이 김덕수 명인 등 4인의 전통예인을 재조명하고자 마련한 ‘명인을 만나다’ 무대에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차원의 특별기획 공연을 9월 24일 오후 5시 국악당 흥겨운극장에서 갖는다. 그는 이날 사물(四物)과 영남성주굿, 아쟁, 태평소 등 50년 간 갈고 닦아온 7가지 기예를 선보일 예정이다. 경기도립국악단 초창기 멤버로서 그동안 도내 국악발전을 위해 땀흘려 온 그를 국악당에서 만나 풍물과 함께 한 음악인생에 대해 들어봤다.

◆ 풍물과 함께 한 50여년의 삶

1953년 부산 서대신동 당시 피난촌에서 태어난 조갑용 명인은 6살 때부터 동네 농악대 상쇠(꽹과리를 치면서 전체를 지휘하는 사람)였던 부친 조만석 씨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풍물을 배우며 자랐다.

그가 농악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한 시기는 1971년. 당시 19살이었던 그는 전라도 여성농악대에 들어가 우도농악의 명인 백남윤 선생으로부터 꽹과리와 열두발 상모를 익혔다.

현재 경기도립국악단 사물놀이 지도위원이자 ‘장구의 전설’로 불리는 이부산 명인도 이 곳에서 만났다고 한다.

어린 시절 판자촌에 거주하면서 깡통과 냄비를 두드리며 학창시절을 함께 한 풍물은 그에겐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는 20~34살까지 15년 간 풍물과는 담을 쌓은 채 고향에 내려가 농사를 짓고 살았다고 한다. 이유는 한가지였다. 생계에 대한 어려움.

“어린 시절도 어렵게 살아왔는데, 풍물을 생계의 수단으로 삼는다면 결과는 물 보듯 뻔한 것이었어요. 손도 대지 않는다고 마음 속으로 결심을 했죠. 하지만 무대에 대한 그리움만은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인 지 필연인 지는 알 수 없지만 풍물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그에게 찾아왔다. 부산에서 음악적 자양분을 섭취해 온 고장의 명인으로 유명했던 그를 국립국악원에서 섭외하러 찾아온 것. 제2의 풍물인생의 시작이었다.

1987년 국립국악원 수석단원으로 입단한 그는 실력을 인정받았던 풍물의 기량을 더욱 높이고 새로운 기예를 본격 익히기 시작한다.

그가 종종 무대에서 선보이는 아쟁 산조는 ‘아쟁의 대가’인 박대성 선생의 계보를 잇는 박종성, 김일구 명인으로 배운 것이며, 태평소 시나위는 대금 서용석 명인으로부터 익혔다.

유삼용 명인으로부터는 영남 성주풀이를, 김태용 명인에게는 김태용계 영남성주굿을 전수받았다.

1994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1-가호 진주 삼천포 농악 전수교육조교로 선정된 그는 갈고 닦은 7가지의 기예를 88년 서울 올림픽 기념 공연은 물론 독일·프랑스 세계전통예술제 등 세계 100여개국 공연에 참가, 유감없이 실력을 발휘했다.

영남 풍물놀이 부분에 있어 확고한 위치에 있는 그가 1999년 경기도립국악단 수석단원으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웃음이 나올 수 있는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술자리에서 내뱉은 약속 때문이라고 그는 말한다. 경상도 사나이답다고 해야 할까.

현재 그는 도립국악단 사물·타악악장을 맡으면서 지금도 왕성한 활동과 함께 후배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 풍물 사랑을 보다 깊고 넓게 알리다

조갑용 명인은 50여년을 함께 한 풍물을 해외에 전파하는 노력에도 큰 힘을 보태고 있다.

그는 1994~98년 5년 간 중국 연변 조선족 예술단 오케스트라 단원에게 사물놀이를 전파했으며, 2년 전 가진 교민을 위한 일본 공연도 사비를 털어 도립 사물놀이팀과 객원 등 10명을 꾸려서 할 정도로 열성적이다.

특히 2006년 당시 제갈공명이 칠성단을 쌓고 동남풍을 빌었던 적벽공원 내 남병산과 적벽대전의 자취가 남아있는 곳 근처에 특설무대에 세워 가진 ‘적벽대전의 환몽(幻夢)-한국음악 속의 적벽사화(赤壁史話)’공연은 언론에서도 크게 다룰 정도로 화제가 됐다.

당시 공연에서는 판소리 ‘적벽가’를 비롯해 서도소리 ‘공명가’(소리 유지숙), ‘삼국지 종결 장시’ 중 일부의 시낭송(낭송 공혜경)과 함께 조갑용 명인이 이끄는 사물놀이팀이 신명나는 가락과 신들린 듯한 몸짓으로 중국인들의 발길을 우리 국악의 세계로 재촉했다.

중국인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처음엔 약 100명에 불과했던 중국 청중도 공연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자 두 배 이상 늘었다고 한다.

그는 “한국문화를 잘 알지 못하는 외국인들과 해외 교민들에게 한국문화를 알리는 일만큼 보람된 일은 없는 것 같다”며 “앞으로도 힘 닿은대로 계속해 진행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러한 움직임에도 우리나라에서 점차 우리의 음악이 소외시 되는 현실에 대해 아타까움을 표했다.

“관객(중)을 위해선 무대에서 쓰러져 죽어도 된다는 마음 가짐을 갖고 항상 공연에 임하고 있지만, 우리 음악이 처한 지금의 현실을 대할 때면 너무도 마음이 아프고 힘이 빠지는 것은 어쩔 수 없어요.”

그는 “우리 음악을 배제시킨 채 서양음악만을 받아들이는 것은 분명 잘못된 현상”이라며 “이제는 우리음악을 사랑하고 아낄 수 있는 시기가 되지 않았나 판단된다”고 말했다.

약 력

- 1953년 부산 출생

-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최고지도자과정 수료

- 중요무형문화재 제 11-가호 진주 삼천포 12차 농악 전수조교

- 국립경찰대학 총경급 치안정책과정 직무교육관

- 한국문화쟁책연구소 이사

- 수원대학교 국악과 겸임교수

- 경기도립국악단 악장

- 1985년 전국농악경연대회 대통령상 수상

- 1991, 1993년 한국의 음악 사물놀이 음반 발매

- 1999년 조갑용 성주굿 음반 발매

- 2002년 경기국악제 기악부 대상 수상

- 2011년 조갑용의 길 음반 발매

- ‘조갑용의 풍물’ 개인발표회(국립국악원)

- 명인 초대석(국립극장) - 성주굿 공연

- 한국문화사절 세계 100여개국 공연 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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