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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아들의 노래

 

시어머니 85세 생신을 맞아 온 가족이 모였다. 평소 참석하기 어려웠던 홍콩에 사시는 큰시누 내외와 올 초 결혼한 조카내외가 합류하니 예약된 D뷔페 방이 꽉 찼다.

이미 성년이 된 손위 시누조카들과 막내인 우리아이들도 대학생 숙녀가 되고 중학교 3학년 아들은 아이 티를 벗어 덩치로는 어른 한 몫 하니 모두 어른들 가운데 외려 어머님만 어린아이처럼 작아 보였다. 1천700명 수용할 수 있다는 거대한 홀과 한식, 중식, 일식뿐 아니라 서양요리며 퓨전요리를 망라한 온갖 산해진미가 차려진 그 풍경 속에 많은 사람들이 시끌벅적, 왁자지껄 소란한 가운데 정신 없이 오가며 두 시간이 지나갔다. 그리고 빨리 자리를 비워주고 나왔다. 저녁 시간을 두 시간씩 2회에 걸쳐 7시를 두고 나누어지기 때문이었다. 우리 식구뿐 아니라 다른 가족들도 생일이며, 각종가족 행사모임을 그 곳에서 가진 것 같았다. 우리 집으로 모두 모여 과일과 술 한잔씩 건네며 담소를 나누다가 모두 흩어졌다.

남겨진 그릇을 치우고 정리하는데 남편이 식탁에 김치와 찌개를 놓고 밥을 먹었다. 만 원어치도 못 먹었다나……. “왜 난 맛있게 먹었는데……” 하던 일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며 웃다가 문득 어느 날이 떠올랐다.

5년 전, 아들이 초등학교 5학년 때 초가을쯤 내 생일이었다. 저녁 어스름이 베란다 창을 덮어 올 무렵이었던 것 같다. 식구들과 저녁 먹기로 돼 있었는데 어린 아들이 쭈뼛거리며 다가왔다. 그리고 “엄마 난 선물을 준비 못했는데……”하며 미안한 얼굴이었다. “괜찮아, 이렇게 건강히 잘 자라줘서 선물보다 더 고마운데……” 그래도 아들의 얼굴이 환해지지 않기에 “준아, 엄마 준이 노래 선물 받고 싶은데, 그러고 보니 아들노래 들어 본 일이 없네” 했다. 그랬더니 노래만은 절대로 못하니 다른걸 사서 선물하면 안되냐고 옥신각신하다가 결국은 음악교과서 책을 들고 나와 요즘 배우는 거라면서 ‘해당화’를 불렀다. 식탁의자에 앉은 엄마를 위해 아들이 음악책을 들고 진지하고 성실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엄마가슴에 깊은 기쁨의 물결이 차오르고 눈시울이 뜨끈해져 아들을 품에 안을 때까지 노래를 선물했다.

“해당화가 곱게 핀 바닷가에서 나 혼자 걷노라면 수평선 멀리, 갈매기 한두 쌍이 가물거리네 물결마저 잔잔한 바닷가에서……”

누군가 내게 가장 기억나는 선물이 뭐냐고 묻는다면 당연 그 때 ‘해당화’ 노래라고 말한다. 이제 유년기의 마지막이었던 그 모습은 사라지고 거뭇거뭇 수염이 나고 변성기 지난 목소리로 때때로 엄마를 압도하기도 하지만 그 기억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가슴에 간직돼 있다. 영원히 변하지 않을, 외려 한 해가 지날수록 애틋함이 더해진다.

우리 어머니는 지난 힘겨운 시절과 비교해 풍요로운 현대 세상풍조가 신기하고 감사해 장성한 자식들이 당신 곁에서 건강하고 배부르게 사는 그 모습만으로 선물이 되고 기쁨이 되시리라. 그런데 가끔씩은 케이크와 장미꽃이 있는 이런 행복한 생일의 기쁨보다 가슴 속에 꼬옥 박히는 눈물 나는 아름다운 감동하나 선물 받고 싶다면 과욕일까? 맛있게 밥 한 그릇 비우는 남편의 허기진 가슴이 느껴져 멋적게 웃고 말았다.

▲ 문학세계 시부문 등단 ▲ 경기 수필가협회 회원

/손유미 시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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