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토)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입은 거지는 얻어먹어도 헐벗은 거지는 못 얻어먹는다”고 한 속담은 옷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조선시대때 나라의 직조업무를 총괄하는 직조국(織造局)이 생긴 것은 1885년(고종 22년)이었다. 이후 한양에 대한직조소(1879년), 종로직조소(1899년), 김덕창염직소(1902년), 경성뉴직주식회사(1910년) 등이 설립됐는데 수원에는 1932년 김학배(金學培)가 창설한 수원직물공장이 최초였다. 그 뒤를 이어 잇따라 수원에 직물공장이 세워지게 되는데 1940년을 전후한 시기가 전승기로, 크고 작은 공장이 자그마치 30개 가까이 됐다. 당시(1935년)의 수원읍 인구래야 1만 4천명이 채 안되었으니까 ‘직물왕국’이라할만 하였다. 그러나 군계일학(群鷄一鶴)의 존재는 1939년에 회사 설립을 시작해 1941년 벌말(지금의 평동)에 세운 선경직물주식회사였다.
선경(鮮京)은 조선의 선만(鮮滿)직물주식회사와 일본의 경도(京都)직물주식회사가 공동투자한 회사로, 두 회사의 머리자 즉 ‘鮮’과 ‘京’을 합쳐 만든 상호였다. 해방이 되고나서 선경은 적산(敵産)공장이 되면서 조업을 중단 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다. 이런 난국에 혜성(?)처럼 등장한 인물이 선경그룹 창시자인 최종건(崔鐘建)이다. 최종건은 아버지 최학배(崔學培)에게 선경 인수자금을 달라고 졸랐지만 끝내 거절당하자, 아버지가 집을 비운 사이 거금 1억3천만환을 훔쳐 선경을 인수해 버렸다. 방법과 수단은 바람직하지 못했지만 그는 목적이 옳다고 믿었기 때문에 엄청난 일을 저지른 것이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그러나 그는 1973년 11월 25일 49세 나이로 ‘미완의 선경’을 남겨둔 채 눈을 감았다. 이제 그 선경(오늘날의 SK 케미칼 공장)이 오는 9월 폐업한다.
이유는 직물이 사양산업으로 전락한데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적자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란다. 이제 ‘직물왕국’의 영화는 사라지고 있다.
이창식/주필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