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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칼럼] 세금도‘소통·협력의 시대’가 다가온다

 

과거 예기(禮記)의 단궁하편(檀弓下篇)에서 나오는 공자의 설화에서 유래된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중국의 춘추시대 말엽, 공자가 고국인 노(魯)나라 조정의 실세인 대부(大夫) 계손자(季孫子)의 가렴주구(苛斂誅求)로 백성들이 몹시 시달리고 있을 무렵, 이에 환멸을 느끼고 제나라로 가던 중 지금의 산둥성 태산(泰山) 기슭을 지나가고 있을 때 풀숲의 허술한 세 개의 무덤 앞에서 슬피 우는 여인을 만났다. 사연을 물은 즉 시아버지, 남편, 아들을 모두 호랑이가 잡아먹었다는 것이었다.

이에 공자가 “그렇다면 이곳을 떠나서 사는 것이 어떠냐”고 묻자 여인은 “여기서 사는 것이 차라리 괜찮습니다. 다른 곳으로 가면 무거운 세금 때문에 그나마 살 수가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는 호랑이 보다 무서운 세금 때문에 이사마저 가지 못하는 것으로 세금을 극히 부정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권력자들이 칼과 권력을 앞세워 국민의 재산을 수탈해갔던 모습이 궁핍한 백성들 뇌리에 얼마나 깊게 남아 있었는지를 말해주는 것이리라.

우리가 사는 오늘날은 ‘소통과 협력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정치는 물론 노사관계, 국제간 무역거래, 직장 상하관계, 가족관계에 이르기까지 지식정보화 시대에 소통과 협력이 없는 일방의 독선은 있을 수 없을 뿐더러 결코 행복할 수도 없다.

이에 따라 과거와 같은 통제·규제·간섭의 역할은 작아지고 있고 이러한 추세는 조세행정에서도 예외일 수는 없다. 과세당국의 입장에서 납세자는 이제 더 이상 공권력의 집행대상이 아니라 협력의 파트너이자 섬겨야 할 고객인 것이다.

우리 조세행정도 과세관청 위주의 독단적인 징세방식이나 신고관리, 세무조사에 있어서 납세자의 불만이 많았던 게 사실이다. 기업은 점점 대형화되고 거래가 다양해짐에 따라 당면한 세금문제도 어렵고 복잡해지고 있다. 사회과학 분야인 세법의 해석이나 적용에 있어 수반되는 문제가 적시에 해결되지 못할 경우 기업의 투자나 경영 등에 차질을 빚을 수 있고, 세무조사 시에는 뒤늦게 가산세, 불복비용 등이 과다하게 발생하게 돼 기업에 경제적·정신적 스트레스를 주게 될 것이다.

이는 각종 세금 신고 전이나 거래가 발생한 시점마다 납세자, 과세관청 양자가 소통과 신뢰·협력관계에 의해 그때마다 공개·협의해 세법에 따라 적절하게 해결했더라면 발생하지 않았을 기회비용인 것이다. 100원을 벌기 위해 제품을 얼마나 많이 만들어 팔아야 할지를 생각하면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이런 점을 고려해 국세청이 조용히 달라지고 있다. 지금의 경제환경에서 세금관련 여러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성실신고 의지가 있는 기업과 국세청이 성실납세이행협약을 체결하고, 서로 같은 눈높이에서 신뢰와 협력관계로 세무쟁점을 도출해 신속·정확하게 해결해 주는 ‘수평적 성실납세제도’(Horizontal Compliance)를 지난해 시범운영을 거쳐 올해 초부터 전국 지방청으로 확대해 70개 기업을 상대로 본격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국세청이 기업과 함께 열린 마음으로 세무상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예측가능성을 높여 효율적이고 균형 잡힌 성숙한 납세문화를 조성해 나가고자 하는 것이다. 비단, 기업과 국세청이 상호 논의하는 세무쟁점 뿐만 아니라 납세현장에서 가감 없이 보여지는 불합리한 세법규정이나 행정제도를 도출, 개선해 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네덜란드 등 납세의식이 투명한 일부국가에서는 유사한 제도를 이미 시행 중이고 OECD에서도 성실납세를 위해 기업과 과세관청 사이에 발전적 협력관계 구축을 적극 권고하고 있다.

‘수평적 성실납세제도’는 궁극적으로 국세행정이 지향해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이상적인 납세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느 일방이 아닌 납세자와 과세관청이 동등한 책임을 가지고 협력해야 하기 때문이다. KDI는 신뢰수준만 높여도 1%p의 경제성장률이 높아진다고 발표한 바 있다. ‘수평적 성실납세제도’가 세무문제 조기해결과 함께 기업의 투명성과 신뢰도를 높여 기분 좋게 납세의무를 이행할 수 있는 납세문화의 초석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진경옥 국세청 법인세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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