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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가을이 좋은 이유

 

요즘, 고인이 된 이문구(李文求 1941~2003) 선생의 ‘문인기행’이란 책에 푹 빠졌다.

책 속의 김동리(金東里1913~1995)의 이야기-나이촌수 보아서는 숙질(叔姪) 속내의로는 부자지간.

평론가 이경철은 이문구를 일컬어 “명천(鳴川, 이문구의 호) 붓 끝에 그에게 한번 놀림을 당하지 않았다면 조선의 문인이 아니라는 농이 나올 정도로 많은 사람을 섭렵했다” 이렇게 평가했다.

그러나 문인이 교제범위가 넓음으로 인해 작품에 소홀했다면 그것도 탈이다. 그러나 한 치의 소홀함도 없었다.

소설가 이동하는 그의 작품을 놓고 “동시대의 많은 작가들이 성급한 소명의식 때문에 경직되고 어설픈 작품들을 마구잡이로 쏟아 내놓고 태연하던 때에 냉철한 장인의식을 가지고 의연히 고집스럽게 자기만의 세계를 가꾸었다” 이렇게 찬사했다.

하여간 글로서 먹고 사는 사람들이라 맛깔스러운 표현에 향기를 더하는 것을 보면 참으로 대단하다!

이문구 선생이 동리에게 향한 존경은 하늘같았다.

“나는 선생의 문인이 된 것을 늘 행복으로 여겨왔다. 큰 소나무 밑에는 송이가 나는 법이라 하기에 나 같은 자도 행여 송이를 닮을 수도 있지 않을까 했다. 그러나 나는 천성이 송이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장마 끝에 돋아나는 쓸데없는 버섯의 하나에 불과할 뿐이었다”

결국 이문구가 한 말은 비통한 듯하지만 겸손성 투정이라고 생각된다. 동리가 이문구에게 쏟는 정은 남달랐다. 바로 대놓고 표시하는 관심이 아닌 은근한 속정(情)이었다.

이문구와 미당 서정주(未堂 徐廷柱)선생 이야기-동리와 마찬가지로 미당에게도 해마다 세배를 다녔는데 어느 날부터 딱 끊었단다.

이문구는 그 이유를 자기책 ‘문인기행’말미, 이렇게 고백한다. “제가 발행인으로 펴낸 이른바 ‘친일문학작품선집’에 선생님의 글을 게재한 뒤에 선생님의 노여움을 짐작하여서 감히 찾아뵙기가 두려웠다”

아버지처럼 모시던 스승을 친일작가라고 규정했다. 참으로 매섭다. 매일 얼굴을 마주하고 가르침을 받고 배가 고프면 밥 얻어먹고……. 잠자리가 마땅하질 않으면 으레껏 찾아가고 용돈마저 궁하면 손 내밀던 아버지, 어머니요, 형인 혈육 같은 사이인데 참으로 섬짓하다.(혈육이란 단어는 무거운 감명을 준다 몇 년 전 받은 연하장에 “혈육의 정인 듯…….” 참으로 숙연했다)

그러나 피치 못할 공석(公席)에서 마주치면 미당은 노여워하긴 고사하고 먼저 반색을 하면서 너는 왜 요새 자주 볼 수 없느냐고 섭섭해 했다고 한다.

그래서 위장이 탈났다고 둘러대면 “어서 속 고쳐가지고 오너라. 아아. 우리는 어이튼 한잔 해야허거던!” 이렇게 번번이 말했다. 그리고 덧붙이기를 “술은 반드시 청탁을 가리되 부디 족보 있는 술을 마시거라”고 당부하면서 꼭 상표가 있는 술, 특히나 동동주니 무슨 특주니 하는 이름 없는 술에 속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단다.

이 대목에, 책을 덮고 한참 생각에 빠졌다. 내 딴에는 상당한 정을 주었다고 생각한 사람이 섭섭한 행동이나 말을 하는 것을 들으면 용서나 이해는 저리가라하고, 다시는 쳐다보기도 싫고 저장된 핸드폰 번호를 지우고 싶은데…….

한심하다. 도량(度量)의 너비와 깊이가 크게 차이나는 것이 부끄러울 뿐이다! 비슷해야 닮으려고 노력이나 하지, 자괴(自愧)스러울 뿐이다. 동리는 친일의 이유를 “해방(解放)이 그렇게 빨리 올 줄 몰랐다” 구구한 변명보다 이만큼 진실한 고백이 어디 있을까?

가을이 좋은 것은 달도 밝기도 하지만, 이런 좋은 책과 더불어 밤을 세우는 맛도 있기 때문이다.

/김기한 객원 논설위원·前 방송인 예천천문우주센터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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