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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만상사] 대학가(大學街) 소묘(小描)

 

며칠 전 대학에 들를 일이 있었다. 참으로 오랜만이다. 여기, 저기 젊음의 냄새가 폴폴, 하늘거렸다.

부러웠다. 마침 축제 기간이라 교정은 온통 현수막으로 덮여 있었다. 나도 한때는 저 무리의 일원이었는데 왜 그리 분위기가 생소하던지?

몇 마디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등록금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요즘, 유명가수를 초청해서 공연한다는 현수막은 눈에 거슬렸다. 주최는 엄연히 총학생회라고 하지만 비용을 대학에서 학생회로 지원하기 때문에 결국은 쌈지돈인 셈이다.

가수들의 가장 바쁜 계절이 대학축제 기간이라나! 유명한 가수 초청은 출연료를 비롯해 엄청난 경쟁이 붙는다. 화려한 쇼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상당히 많은 학생들이 체-게바라의 초상화가 인쇄된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젊음의 특권은 개성인데 베레모를 쓰고 수염을 기른 체게바라를 하나같이 등에 업고 있는 모습은 별로였다. 규격화된 청춘은 또 하나의 관제(官製) 비슷한 냄새가 난다. 베레모 아래 열정적인 눈매와 거칠게 기른 수염 혹시 혁명가의 외모에 반한 것은 아닐까?

혁명이란 젊었을 때는 묘하게 신열(腎熱)을 일으키는 단어지만 나이 들면 어딘가 부담스럽다. 혁명의 사전적 의미는 ‘이전의 관습이나 제도, 방식 따위를 단번에 깨버리고 새로운 것을 급격하게 세우는 일’ 이렇게 규정한다.

급격하다는 말은 침착함이 결여돼 있다. 결국은 실수가 전제된 셈이다. 그렇다고 실수를 두려워하면 역사는 제자리걸음 할 수밖에 없지만….

어쨌든 지나고 보면 한 때고 대부분 혁명을, 우상화한 경험이 있다. 한 때 체게바라가 나의 우상이었다.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과테말라에서 혁명가가 됐으며, 쿠바에서 싸우다, 볼리비아에서 죽음을 맞는다. 참으로 굴곡있는 한 평생이다.

체게바라는 혁명의 보상으로 쿠바의 장관자리를 얻었으나, 그 자리를 던져 버리고 또 다른 혁명을 위해 홀연히 볼리비아로 떠나는 모습은 아직도 우리를 열광하게 한다. 그는 분명 낭만적 혁명가였다.

‘리얼리스트가 되라! 그러나 불가능한 꿈을 가져라’ 정치인이 남긴 명언(名言) 가운데 손꼽히는 이 말을 젊은이에게 남겼다.

가능한 꿈이 아니고 불가능한 꿈, 멋진 말이다. 한 때 깊이 빠져있던 체게바라가 솔직히 이젠 두렵다. 멋있어 보이던 수염도, 거친 세상이지만 나름대로 질서되던 어떤 규칙에 반항하는 고집으로 느껴지고, 열정적인 눈매도, 목적을 위해 타협을 거부하는 아집(我執)처럼 느껴진다.

왜 그럴까? 동기를 생략하고 결과만 보자. 그가 목숨을 걸고 쟁취한 혁명의 과정에서 우리나라식 표현을 하면 민초(民草)들의 희생에 대한 보상이 너무나 어이없기 때문이다. 너무나 초라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아르헨티나는? 지금의 쿠바는? 김일성 치하의 북한을 방문해 성공적인 혁명의 본보기라 했던 조선 인민공화국은 어떤가?

독재의 압제에서는 해방됐지만 인간의 행복에서는 더욱 거리가 멀어졌다. 이념이 굶주림과 추위를 이길 수 있을까? 판단은 그 시대의 환경의 영향을 받기 마련이지만 대의를 위해 이 나라, 저 나라에 혁명의 불만 질러놓고……. 혹시 낭만이 앞선 것은 아닐까?

총을 쥐어본 젊은이들은 생업에 종사할 찐득함을 앗아가는 법이다. 이제는 신(神)이 되어버린 체게바라를 후대의 젊은이들이 숭배한 나머지 계속되는 혁명과 또 다른 쿠데타! 또 하나의 유감(遺憾)!

빛을 가리려고 파라솔을 든 여자 대학생들이 많았다. 아서라! 젊음이란 꾸미지 않는 그대로가 훨씬 발랄한 법이다.

약간 구리빛나고 튼튼하게 보이는 것이, 창백하고 영양실조에 걸린 것처럼 뼈만 붙어있는 날씬함보다 훨씬 매력적이다. 특히 청바지에 파라솔은 금물!!!!

/김기한 객원 논설위원·前 방송인, 예천천문우주센터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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