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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시평] 차가웠던 도가니 유감

 

도가니라는 영화가 없었더라도 심각한 인권유린의 사건은 반드시 없어야 하고 우리 모두의 양심으로 응징해야 한다. 그리고 재발하지 않도록 모두가 경계해야 한다.

도가니, 하나의 영화가 우리 모두를 ‘분노의 도가니’에 빠트린다. 영화 도가니는 수년 전 한 특수학교에서 벌어진 성폭행 사건을 다루고 있다.

교장 등 권력자에 의해 말 못하는 어린 장애인에게 야만적 성폭행이 오랫동안 자행됐다. 또 조금씩 드러나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피해자 그리고 그 가족을 겁박(劫迫)하고 회유하는 또 다른 폭력도 있었다. 가해자는 아닐지라도 이를 숨기려고만 급급했던 학교 관계자의 비겁한 협잡도 이어졌다. 더욱 가관은 드러난 사실을 애써 축소 왜곡함으로써 솜방망이 처벌로 마무리한 국가 기관의 기득 편향적 훼절(毁節)도 있었다.

하나의 영화가 도화선이 돼 장애인 인권에 대한 의미 있는 이슈를 제기했기에 일단 긍정적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만시지탄(晩時之歎)의 아쉬움이 있다. 사건은 이미 수년 전에 벌어졌다. 찢어지는 고통에 여린 아픔이 있었고 연이어 소리 없는 호소도 있었다.

하지만 사회적 반향은 없었다. 각종 매체의 보도를 통해 본격 고발되기도 했지만 모두 냉담하게 등을 돌리기만 했었다. 2009년에 이르러서야 한 유명작가의 동명 소설이 베스트셀러에 오름으로써 사건은 다시금 고발됐고 다소 반향도 있었다.

사건 발생 7년이 지난 2011년 오늘, 한 편의 영화에 의해 사건의 야만, 겁박, 협잡, 훼절에 우리 모두가 주목하게 됐다. 그리고 자행됐던 일련의 흐름에 흥분해 집단적 광분으로 들끓고 있다. 이제까지도 관계 기관은 무관심과 냉담으로만 일관했었다. 한데 거세지는 모두의 광분에 접하고야 해당학교를 폐쇄하고 운영법인의 인가를 취소한다고 했다. 소수의 문제 제기에는 아랑곳하지 않던 저들이 모두의 광분에는 화들짝 놀라 미증유(未曾有)의 결단을 내린 것이다.

문제의 온상인 된 학교를 폐쇄하는 것, 분명 하나의 실현 가능한 해결책일 것이다. 하지만 사건의 배경이었던 학교의 폐쇄가 과연 진정한 해결일까. 우리가 광분해야 할 엄연한 사실은 오늘의 우리 사회에서 이런 반인권적 작태가 이뤘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뤄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 반인권을 지켜내야 할 각종 보루가 형식적 논리만을 고집해 여전히 힘 있는 편에 서있었고 또 앞으로도 그럴 개연성이 높다는 것이다.

인기 영화라는 우연한 계기로 하나의 치부가 들쳐지고 모두의 공분으로 치닫는 우연성을 경계한다. 우연성에 의해 밝혀짐은 만일 그 우연을 접하지 못한다면 여전히 치부로서 존속되는 수많은 가능성을 의미한다.

보다 당위적인 것은 도가니라는 영화가 없었더라도 그런 심각한 인권유린의 사건은 반드시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있다해도 이에 대해 우리 모두의 양심으로 엄히 응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는 유사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모두가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건 발생 연후 해결과 해소의 도가니를 달구기 위해 불이 지펴졌었다. 한데 여러 불쏘시개가 쓰였음에도 우리의 도가니는 전혀 달아오르지 않았었다. 그러다 우연히 하나의 영화에 의해 갑자기 끓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비등점에 다다랐다.

지금 우리 모두는 광분으로 꿇어 오르는 뜨거운 도가니의 한 가운데 서 있다. 난 이 뜨거움에 들뜨면서도 한편 성찰의 차가움이 요구된다고 생각한다. 우선 지독한 아픔이 있었음에도 이를 외면해 왔던 우리의 ‘차가웠던 도가니’를 반성해야 한다. 또 우연히 하나의 계기에서 비롯됐지만 발본색원(拔本塞源)의 경지까지 계속돼야 할 우리의 도가니가 자칫 꿇었다가는 금방 식어버리는 ‘냄비같을 도가니’도 경계해야 한다.

오늘의 도가니는 오랜 시간 달구어진 도가니는 아니었다. 하지만 어찌 끓어오른 도가니가 눈앞의 작은 성과에만 만족하지 말기를 바란다. 그리고 오랫동안 뜨거운 관심으로 지속돼 우리 사회의 반인권을 일소하는 하나의 집단 지성으로, 힘으로 커나가길 간절히 소망한다.

/이계존 수원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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