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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향] 수여선(水麗線)을 아십니까?

 

지루하고 힘들었던 여름의 끝자락에 높은 하늘과 시원한 바람, 만산홍엽이 있었다. 여행의 계절이다. 늘 되풀이 되는 일상에서 벗어나 낯선 곳을 가족이나 벗들과 같이 다녀온다는 일은 생각만 해도 가슴 설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은 여행도 보편화돼 있고 가족 단위의 주말 나들이가 일상화됐지만 옛날에는 친구들과 같이 밤새워 여행한다는 일은 수학여행 말고는 상상도 할 수없는 일이었다.

초등학교 때 일이다. 그 해의 수학여행은 영릉과 신륵사가 있는 여주로 가게 됐다. 교통편은 용인읍에서 여주까지는 기차로, 여주에서는 버스를 타는 일정이었다. 난생 처음 기차를 타게 된 우리들은 기대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소풍날 새벽 우리는 트럭의 적재함에 줄을 맞춰 앉아 용인역으로 갔다.

그 당시에는 수인선과 수여선 기차가 다니고 있던 시절이었다. 역에서 잠시 기다리고 있자 기적을 울리며 기차가 들어왔다. 우리는 선생님의 안내에 따라 기차를 탔다.

그런데 기차가 책의 그림에서 보던 기차와는 사뭇 달랐다. 기관차는 그림대로인데 승객이 타는 객차는 모양이 검게 칠한 창고처럼 생긴데다가 몹시 작았다. 우리 반 60명이 앉기에도 턱없이 모자랐다. 그리고 천장에서는 녹이 슬어있고 의자도 교실의 의자처럼 나무로 만들었으며 벽에는 집에서 쓰는 석유램프가 달려있었다. 뿐만 아니었다. 역을 출발한 기차는 흰 수증기를 뿜으며 달리기 시작 했는데 전혀 속도가 나질 않았다. 철도 옆 자동차 길에는 버스, 트럭 등이 다니고 있었는데 흙먼지를 일으키면서 기차를 비웃듯이 씽씽 지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난생 처음 기차를 탄 우리들은 그게 기차의 전부인 줄 알았다.

그렇게 여주역에 도착했고 버스를 타고 나루터에 가자 이번에는 큰 배에 버스를 실은 채 사람이 밧줄로 배를 끌고 상류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무거운 배를 사람 둘이 밧줄로 잡아당기자니 고생이 오죽하겠는가? 한 시간 정도를 걸려서 배는 강을 건넜고 본격적인 수학여행 일정이 시작됐다. 처음으로 기차여행도 했고 모두들 마냥 좋아했다.

그런데 얼마 후에 기차에 대한 의문이 풀렸다. 이듬해 중학교에 입학한 후 인천으로 장학생 선발고사에 응시하러 가게 된 것이었다. 광주에서 서울 을지로를 거쳐 서울역에서 인천행 기차를 타게 됐다. 그 기차는 책에서 본 바로 그런 모양과 같았다. 기차 내부가 굉장히 크고 높았다. 의자는 초록색 우단 같은 천으로 덮여있었고 천 장에는 희고 큰 등이 손님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문 옆에 3등 열차라는 글씨가 있었다. 나는 이 기차가 3등이라고 돼 있는걸 보니까 수여선 기차는 4등인가보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수여선 기차는 레일 폭이 좁은 협궤열차로 우리나라에서도 그곳밖에 없는 철도였음을 알았다. 일제가 곡창지역인 이천, 여주의 쌀을 일본으로 실어내기 위해 여주에서 인천까지 개설을 했던 것이다.

수여선은 그 뒤 바로 운행이 중단됐고 수인선은 한동안 송도와 수원간을 다녔다. 가끔 어렸을 때를 생각하며 타보곤 했다. 수인선은 정말 타는 맛이 났다. 마치 장난감 기차를 타는 것 같았다. 객차의 의자에 앉아서 발을 뻗으면 건너편 의자에 닿았다. 가는 모습도 좌우로 흔들거리며 어른이 뛰면 탈 수 있을 속도로 다녔다. 차에는 통학생들과 장사하러 다니는 아주머니들이 많이 타고 다녔다. 지금의 안산지역을 지날 무렵부터는 역을 지날 때마다 생선 비린내가 났다. 아주머니들이 각종 해물을 인천으로 팔러 가기 때문이었다.

KTX가 개통된 후 대구로 출장을 가게 됐다. 속도가 얼마나 되는지 궁금했다. 일본의 신간센을 탔을 때 가끔 속도가 객차입구에 게시되는 걸 본 기억이 났다. 그런데 우리 열차는 처음부터 계속 속도가 모니터에 나왔다. 한참 달릴 때 보니까 시속 300㎞였다. 비행기의 이륙 속도가 그렇다는데... 금석지감이 교차했다.

엊그제는 400㎞가 넘는 새 고속열차를 개발했다는 보도를 보았다. 기술력의 진보는 끝이 없다. 나노(Nano)로 따질 만큼 시간개념이 중요해진 오늘날 거꾸로 슬로우(Slow)가 그리워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슬로우 푸드, 슬로우 시티 등 너무 복잡한 생활에서 해방되고 싶어 하는 것이 현대인의 바람이다. 오늘 다시 한번 수인선을 타고 여주엘 가고 싶은 것은 문명의 속도전에 지친 나만의 생각인가?

/김환회 새마을운동 광주시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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