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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 “나는 배우… 이제 연기로 소통할 것”

배우 서갑숙 전수일 감독 ‘핑크’ 스크린 복귀

 

“저는 배우예요. 역할을 잘 해내는 배우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대신 살아내는 그런 배우로 남고 싶어요. 모든 사람 안에 이입해보고 그런 방법으로 사람들과 소통할 겁니다.”

배우 서갑숙이 전수일 감독의 영화 ‘핑크’로 스크린에 돌아왔다. 박철수 감독의 영화 ‘봉자’(2000) 이후 11년 만이다.

그는 이 영화에서 퇴락한 항구의 선술집 ‘핑크’의 주인 ‘옥련’ 역을 자연스럽게 소화했다.

최근 을지로에서 만난 그는 한 인간으로서 굴곡 많았던 지난날을 찬찬히 돌아보며 이제 배우로서 새 삶을 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러면서도 그는 많은 상처를 남긴 에세이집 ‘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1999) 발간에 대해서는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지난 10여년간 정신적·육체적으로 많이 아팠지만 이젠 말끔히 회복됐다는 말대로, 그는 50대에 들어선 적지 않은 나이에도 여전히 건강해 보였다.

다음은 서갑숙과의 일문일답.

-오랜만의 영화 출연인데, 촬영은 어땠나.

▲좋았다. 작년 여름 한 달 정도 군산에서 24회차를 찍었다. 하루도 쉰 적 없이 계속 찍었는데도 별로 힘들지 않았다. 영화에 비가 와야 하는 장면이 많았는데, 하늘이 도와줘서 비가 와야 할 때 오고, 오지 말아야 할 때는 안 왔다. ‘핑크’가 우리(스태프와 배우들)를 잘 이끌어준 것 같다.

-준비를 많이 했나.

▲촬영 시작하기 보름 전에 군산에 먼저 내려갔다. ‘옥련’이란 인물이 삶의 고단함이 묻어나는 인물인데, 생뚱맞게 그 역할에 들어갈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옥련은 삶의 고단함이 눈그늘에 보여야 하고 피부도 윤기나 탄력 없이 푸석해야 했다. 특히 몸이 노출되는 부분이 있어서 삶의 늘어진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다. 평소엔 그렇게 살이 붙은 편이 아닌데, 일부러 밤에 맥주 같은 걸 마시고 자고 몸을 좀 망가뜨렸다(웃음).

-에세이 출간 이후 이미지가 그런 쪽으로 부각된 측면이 있었는데, 이번 영화에서의 노출이나 정사 장면이 부담되진 않았나.

▲부담은 없었다. 그때도 소신이 있었고 지금도 같은 맥락이다. 그 누드 에세이에 실크로드, 길의 원형을 가는 부분이 있는데 인간도 알몸으로 와서 알몸으로 간다는 의미다. 여성의 섹슈얼함이 담긴 몸도 아름답지만, 할머니의 몸도 아름답고 어린아이의 몸도 아름답다. 인간이니까, 사람이니까 아름답다. 20대 초반에 심장병으로 수술을 했는데, 누드에세이에도 그 자국이 그대로 보였다. 아기를 낳아서 튼 뱃살이라든지, 몸에 지도처럼 새겨져 있는 내 삶의 역사가 그대로 보여진 거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고, 그런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다.

-스크린에 복귀한 소감은.

▲나한테는 삶의 굴곡이 있었지 않나. 오르고 내리고 하는…. 그 오르내리는 텀(기간)이 10년씩인 것 같다. 심장수술을 했다가 살아난 뒤 20세기를 보내고 21세기를 맞이하면서 마흔을 넘어가는 시점에 나 자신을 정리하는 의미로 그 책을 냈었다. 이후 상처도 많이 받고 성장도 많이 하면서 다시 살아나 이제 ‘옥련’으로 다시 태어난 것 같다. 그런 맥락에서 내가 맡은 역할들은 전부 어쩐지 반짝반짝하게 현실에 잘 적응하고 살아가진 못하지만, 소외돼도 마음이 예쁜… 많은 사람들을 대표하는 그런 역할인 것 같다.

-당시 그 정도의 파장을 일으키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나. 어떻게 그렇게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낼 수 있었나.

▲내 목표는 마음을 벗어서 보여주는 것, 몸을 벗어서 보여주는 것, 관객과 무대 위에서 만나는 것 그 세 가지였다. 20세기를 보내고 21세기를 맞이하면서 내 스스로가 힘들고 앞으로 어떻게 나가야 할지를 몰라서 그냥 주저앉아서 내가 어떻게 살아왔나를 쭉 적어본 거다. 그런데 내가 힘들고 고통스럽고 실수하고 아팠던 것들이 가만보니 사랑이 무엇인지 몰라서 그런 거였더라. 그래서 나부터 내 마음을 치부까지 활짝 내보이고 ‘너도 아팠니, 나도 아팠다’고 하면 사람들과 만나고 소통할 수 있겠다 싶었다.

또 우리 사회가 굉장히 보수적이고 폐쇄적인데, 고통이 누른다고 없어지지 않듯이 성(性) 이야기나 사랑 이야기를 밝은 곳에서 내놓고 얘기하면 자연스럽게 흘러가야 할 방향으로 갈 거라고 생각했다.

특히 우리나라는 남성 중심의 사회구조라서 여성들이 많이 억눌려 살고 있다. 그런 것들에 대해 나는 책을 통해 바깥으로 드러내고 토론하자는 거였다. 나에게 ‘페미니스트’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나는 ‘아니다, 굳이 말한다면 휴머니스트다’라고 말하고 싶다. 남성과 여성, 어느 한 쪽이 가해자나 피해자가 아니라 힘든 걸 다 드러내놓고 서로 상대방을 어루만지자는 의도였다. 그런데, 그 결과는 정반대였다. 천편일률적인 인터뷰들을 다 끝내고 난 뒤, 내 뜻이 결국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걸 보면서 ‘나는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만 바라본다’ 그런 말을 했었다.

-이후 어떻게 지냈나.

▲그후 10년 동안은 그런 편견들 때문에… 마치 발가벗고 나갔는데 사람들이 돌을 던지는 것처럼 힘들었다. 갑상선이 급하게 와서 7~8년은 몸으로도 많이 아팠다. 한번은 심장이 멎을 뻔하기도 했고…. 운동하고 산에 열심히 걸어다니고 마음을 내려놓으면서 건강을 찾았다. 정신적으로는 ‘사람들이 날 이해 못 해준다’ ‘따뜻하게 못 해준다’ 그런 게 아팠던 건데, 시간이 지나면서 ‘아, 내가 그렇게 기대하는 마음이 있었구나, 이해받으려고 하는 욕심이 있었구나’ 하고 깨달았다. 결국은 나의 잘못이더라. 그렇게 놓고 나서 작년부터 몸도 많이 건강해졌고, 내가 배우니까 연기를 하자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연극 한 편하고, 영화 ‘핑크’도 찍게 됐다. ‘핑크’가 부산영화제에 초청되고 극장 상영도 하게 돼 정말 기쁘다. 이번 가을 학기부터는 학교(청주대 영화과)에서 학생도 가르친다. 나는 연극, 영화, TV를 다 해봤기 때문에 후배들에게 실질적인 것을 잘 알려줄 수 있을 것 같다. 해보니까 가르치는 일이 잘 맞고 보람이 있다.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연극 공연을 준비하는 것이 있다. 내 삶과 생각과 다르지 않은 내용이고 특히 여성과 소통하는 극이 될 거다. 멋진 공연을 할 거다. 나는 배우다. 배우의 삶을, 역할을 잘 해내는 배우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대신 살아내는 그런 배우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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