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세계문화유산으로 거듭난다 <6>
남한산성 세계문화유산으로 거듭난다 <6>
  • 이동훈 기자
  • 승인 2011.11.15 18:30
  • 댓글 0
  • 전자신문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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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 등재 우선 추진대상 선정

 

역사 숨쉬는 남한산성 1900년대 모습 재현 세계문화유산 등재 한뜻
6. 남한산성 세계문화유산 등재 박차

 

▲ 남한산성 실황도

 

 

▲ 서문

 


◇1900년대 남한산성 재현의 기반구축과 활용

지금까지 알아봤듯이 남한산성 지적변천이 지닌 특성을 정한다면 ‘1900년대 전·후한 모습의 보고’라는 표현할 수 있다.

주요한 시설의 위치와 그 시설이 들어섰던 부지의 면적, 경게를 대략 파악 가능하다.

더불어 ‘조선고적도보’에 수록된 일제강점기 당시 광주읍내 모습을 찍은 사진자료는 2차원 지적 자료에 3차원화 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한다.

땅의 모습을 보여주는 지적 자료에 집의 규모와 구조, 형상을 전해주는 사진 자료를 합쳐보면 1900년대 전·후 모습이 그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광주부양안(1900)’에는 해당 가옥의 규모와 지붕 재료가 명시돼 있어 각 자료를 시기별로 분석하고 상호 교차·분석하면 공통점과 차이점을 구별해 낼 수 있다.

이를 통해 1900년대 전·후 남한산성의 모습을 재현해 낼 수 있는 기반을 구축했다.

 

▲ 전승문(북문)

 

 

▲ 지화문(남문)

 

◇지적 관련 자료를 종합한 통합연구 추진

일제강점기 이후 남한산성의 지적을 기록한 ‘토지조사부(1911)’를 비롯해 ▲지적원도(1912) ▲임야조사부(1919) ▲임야원도(1920) ▲폐쇄지적대장(1992년 이전) ▲폐적지적도(2005년 이전) ▲토지대장(2010) ▲지적도(2010) 등 8가지 기초자료를 토대로 해 사료와 비문자 사료 들을 더해 종합 분석함으로써 앞서 말한 남한산성의 지적변천이 지닌 특성에 대해 알 수 있었다.

하지만 1911년 이전의 모습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조선말기∼일제강점기에 이르는 시기의 변천을 논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준 것은 바로 ‘광주부양안(1900)’이었다.

예를 들어 행궁과 인화관은 숭렬전을 비롯해 현절사 등 단묘시설은 조선시대 이래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그 위치와 범위가 비교적 잘 유지되었으므로 조선시대 사료와 ‘지적원도(1912)’의 비교 검토에서 기준점과 검증의 근거 역할을 할 수 있다.

실제로 1900년 양안에 기록된 각 시설물들의 위치를 찾는데 행궁과 단묘의 위치를 근거로 해 찾을 수 있었다.

이러한 과제는 일제에 의해 조사된 자료에 기초해 ‘지적원도(1912)’에 기록돼 이전의 상황을 추정하고 이후 변화를 살펴보는 것으로 진행됐다.

1912년 ‘지적원도’가 작성된 이후 행궁영역은 필지가 분할됐으나 그 원형을 간직하고 있었으며 사묘(고조부모, 증조부모, 조부모, 부모 등 4대 조상의 신위를 모신 사당)는 거의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

‘광주부양인(1900)’과 ‘지적원도(1912)’를 자세히 비교해 보면 각 필지의 위치와 면적에서 일부 일치하는 것과 일치하지 않는 것이 함께 있는데 행궁과 시묘 부분에서는 어느 정도 일치점도 보이고 있다.

일치하지 않는 부분은 두 자료의 제작시기의 차이에서 오는 변화과정이라 할 수 있고 양안(量案·토지를 측량해 만든 토지대장)의 표기형식을 공간적으로 해석하는 과정에서 왔다고 추정하고 있다.

1900년에 작성된 ‘광주부양안’은 1912년의 이전 남한산성 내외 토지와 지형, 가구의 구성 상황을 보여주는 자료로서 그 가치가 있지만 양안의 해석방법과 양안에 기록된 정보를 건축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연구와 방법에 대해 생각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있다.

‘광주부양안’과 1912년 지적측량까지의 시간차이는 11년 정도에 불구하지만 그동안에도 필지의 늘고 줄었던 것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므로 이러한 사안을 감안해 일제강점기 직전과 그 이후의 상황을 보다 명확하게 추적해야 한다.

특히 기존 남한산성 지적 관련 자료 8종과 ‘광주부양안’을 상호 보완자료로 활용해 시설의 위치나 규모 등을 파악, 전문가들의 여러 의견들을 수렴한 연구가 필요하다.

양안 자체에 대한 사학 연구를 비롯, 양안의 내용 분석(소유주, 건축형태와 규모 등)하는 데에 건축역사와 마을, 민간 연구자가 힘을 합쳐 통합 방식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이러한 분석을 통해 ‘토지조사부(1911)’와 비교해 공통점을 걸러내고 앞으로 ‘지적원도(1912)’에 결과를 반영, 분석해 지형의 3차원 복원사업도 동시해 병행한다면 1900년 전·후한 남한산성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 좌익문(동문)
◇1900년대 남한산성 성안 모습 모형 제작

남한산성의 재현·복원 작업은 문화유산의 가치를 높은 방법 가운데 가장 크다.

진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문화유산에 대한 학술 연구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 ‘1900년대 남한산성 성안 모습’을 모형으로 제작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남한산성 내부의 땅 모습은 ‘지적원도’를 통해 재현할 수 있고 ‘광주부양안’을 활용, 집의 규모와 지붕재료 등을 추측해 볼 수 있다.

또한 ‘조선고적도보‘의 사진자료에 근거해 그 배치방식을 짐작할 수 있으며 현재 남한산성 내 전통민가는 아니지만 경기도 도내 전통민가의 실측도가 존재하고 있으므로 1900년대 전·후한 시기 남한산성에 근접한 모형 제작이 가능하다.

이런 모형의 토대로 발생 가능한 문제점을 예측하고 실제 남한 산성 내 재현작업에서 빚어질 수 있는 문제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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