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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극중 강수정은 가장 한국적 어머니”

‘천일의 약속’서 섬세한 내면연기 열연 김해숙

 

그의 첫마디는 “김수현 선생님의 힘이다”였다.

“김 선생님께서 강수정을 통해 또 다른 어머니상을 만들어주셨어요. 강수정 안에는 모든 어머니가 들어있는 것 같아요. 친구에 대한 우정과 자식에 대한 사랑, 남편에 대한 헌신 등 모든 것을 다 갖고 내적으로 승화시킨 인물이죠. 그런데 새로워 보이지만 어찌 보면 가장 한국적인 여자가 아닐까 싶어요. 모든 것을 참고 인내하면서 살아온 엄마거든요. 권위적인 남편을 안고살며 속에 쌓인 게 많겠지만 겉으로는 표현하지 않잖아요.”

그는 “직접적이고 사실적인 연기는 차라리 쉽다. 하지만 수정은 내면으로 삭이는 섬세한 연기가 필요한 인물”이라며 “수정이가 속으로 삭여도 시청자가 울 수 있게 해야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나도, 시청자도 가슴 한켠을 잡고 울게 되는 것 같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강수정은 자라면서 한번도 속을 썩여본 적이 없는 반듯한 외동아들이 결혼 직전 파혼을 선언하면서 인생 최고의 충격에 휩싸인다.

하지만 충격으로 인한 파동은 그리 크지 않았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렇다. 내적 진동은 어마어마했을 테지만 그는 고매한 인격으로 최대한 그 충격을 흡수한 뒤 겉으로는 최소한의 반향만 드러냈다. 아들이 더 아플 것이기에, 파혼당한 여자 쪽이 더 상처가 클 것이기에 그들을 배려하고 이해하느라 자신의 아픔은 되도록 삭이는 것이다.

“대본 연습할 때 너무 슬퍼서 눈물이 뚝뚝 떨어져요. 그런데 연기할 때는 그렇게 하면 안 되니 너무 힘들죠. 배우로서도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슬퍼도 그것을 드러내지 않는 게 굉장히 힘들어요. 서연(수애)이랑 마주하고 앉은 신을 방송에서 보는데 제가 눈물을 참으려고 이를 악물고 노력하는 게 보이더군요.(웃음)”

그는 ‘천일의 약속’에 대해 “내가 출연해서가 아니라 정말 한 편의 시 같은 작품이다. 드라마를 보면서 아름다운 시나 소설을 읽는 느낌이 들지 않나”라며 감탄을 거듭했다.

“요즘 사랑의 개념이 너무 쉬워진 것 같아요. 우리 때는 사랑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애틋하고 아름다웠는데 요즘은 너무 이기적이에요. 그런 시대에 ‘천일의 약속’이 사랑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만드는 것 같아요. 사랑은 자기중심적이어서 안 되고 희생이 따르게 마련이라는 것을 보여주면서 ‘나도 저런 사랑을 한번 받아봤으면, 해봤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하잖아요. 그 과정에서 젊은이의 알츠하이머라는, 어쩌면 죽음보다 더 심한 고통을 그리면서 슬프기보다 가슴에 멍이 들어가는 느낌을 전해주고 있고요. 수정이 지금은 서연에 대한 지형의 사랑을 반대하지만 결국에는 아들의 편에 서지 않을까요. 내 아들이 그리 사랑한다면 그것을 받아들여주지 않을까요.”

그런데 극중 강수정의 표정이야말로 한 편의 시다. 그가 보여주는 표정과 눈빛은 백 마디 말보다 더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베테랑 연기자 김해숙은 부모로서 겪게 되는 세상이 무너지는 충격을 오롯이 자신의 얼굴에 담아 전달하고 있다. 덕분에 그의 얼굴을 클로즈업한 화면은 바늘 떨어지는 소리마저 들릴 것처럼 고요하지만 동시에 지진이 일어난 듯 폭발적이다.

“정말 신경 많이 썼어요. 살도 빼고 머리도 파격적으로 쇼트컷을 하고 의상에도 굉장히 공을 들였어요. 대사도 많지 않고 비중도 크지 않지만 새로운 인물을 표현해야한다는 부담감이 컸고 그래서 겉모습부터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김해숙의 변신이 더욱 화제가 되는 것은 전작인 SBS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보여줬던 모습과 판이하기 때문이다.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그는 대가족의 무게를 어깨에 짊어진 중산층의 부산하고 외향적인 성격의 엄마를 연기했다. 겉모습에서부터 푸근하고 친근한 인상을 준 데다 갱년기 우울증까지 다루며 뼛속까지 우리네 엄마를 연기했던 그다.

그러나 돌아보면 ‘인생은 아름다워’ 때도 그는 파격적이었다. 동성애자인 의붓아들을 온몸으로 안으며 인간에 대한 예의와 애정을 용감하게 실천했던 엄마였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드라마를 손 놓고 있었어요. 비슷한 엄마 역만 들어왔거든요. 그때 김수현 선생님이 ‘인생은 아름다워’를 주셨는데 정말 새로운 엄마였죠. 그때에 이어 이번에도 새로운 캐릭터를 주시니 김 선생님은 정말 대단한 분입니다. 배우로서도, 한 여자로서도, 인간으로서도 존경합니다. 그런 캐릭터를 주시기 때문에 제가 변신할 수 있는 거잖아요. 배우로서 희열을 느끼게 해주세요.”

“김수현 선생님이 ‘부모님 전상서’ 때 하신 말씀이 가슴 속에 팍 와서 박혔는데 ‘잘되는 사람은 다 이유가 있다’였다. 그 말이 머리를 때리더라”는 그는 “항상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건방져지지 않았나, 교만해지지 않았나 점검한다. 작은 역이라도 내게 주어졌을 때는 다 이유가 있다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그는 연예계에서 나이가 들수록 더 주가를 날리는 몇 안 되는 배우 중 하나가 될 수 있었으리라. 개봉을 앞둔 영화 ‘도둑들’과 TV조선의 ‘고봉실 아줌마 구하기’도 김해숙의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도둑들’이 개봉하면 아마 극중 제 모습에 기절하실 거에요.(웃음) 또다시 새로운 도전을 했습니다. ‘고봉실 아줌마 구하기’는 요새 드라마로는 드물게 50대 여성의 사랑과 성공을 그린다는 점이 마음에 들어 선택했어요.”

그는 “50대 중반인 난 분명 중년의 엄마지만 이 나이에 새롭게 여배우로 자리매김했다는 것이 너무나 행복하다”며 환하게 웃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 내년에 또 어떤 변신이 기다리고 있을까 기대할 수 있다는 게 즐거워요. 끝까지 매너리즘에 안 빠지고 싶고, 사랑하는 연기를 즐겁게 하며 살고 싶어요. 사실 체력적으로 힘들긴 하지만 또 다른 뭔가가 날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달려갈 힘이 절로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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