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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향] 남한산성 탐방 연대기

 

광주시 중부면에 있는 남한산성을 광주 땅으로 알고 있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성곽을 경계로 남쪽은 성남시, 북쪽은 하남시이고 산성 내부와 그 중 통행량이 비교적 적은 동쪽방면이 광주시이고 도립공원으로 경기도에서 관리하고 있어 광주시가 별로 관여할 일도 없기 때문에 찾는 이들은 대부분 성남시 땅이겠거니 한다. 그게 뭐 대수냐 하겠지만 광주사람들의 남한산성에 대한 애착과 긍지는 자못 비장하기까지 하다.

1천년 전 광주는 지금의 안산에서부터 한강 이남의 엄청난 지역에 걸쳐 있었다. 그래서 고려 때에는 경기와 충청인근을 양광도라고 불렀는데, 이는 양주와 광주 때문에 붙은 이름이었다. 세월이 흐르고 행정구역의 개편에 따라 계속 줄어들어 지금은 남한산성만이 천년광주의 자존심을 지탱해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한산성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자란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참 많이도 소풍을 다녔다. 봄, 가을 소풍 때마다 항상 목적지의 첫 순위에 올랐으니까.

첫번째 기억은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졸업반 수학여행버스에 함께 얹혀 갔었는데, 길도 험했고 성곽이나 성문이 부서져 볼품이 없었다. 수어장대 옆에는 탑신 위에 날개를 편 봉황새가 있는 이승만 박사 송수탑이 있었다.

중학교 때부터는 거의 매년 그 곳으로 소풍을 가게 됐다. 1학년 때 가보니 그 탑이 없었다. 4.19혁명 때 사람들이 제일 먼저 쓰러뜨리고 땅에 묻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성곽에서 내려다보는 삼전도 쪽은 뻘겋게 흙 드러난 낮은 산등성들만 보였다. 중학교 때에는 광지원까지는 노선버스로 가서 걸어 올라갔다. 고등학교 때에는 30리 가까운 길을 걸어서 간 적도 있었다. 소풍 때마다 가니까 지겹다고들 했다. 매년 소풍을 다닌 덕에 나는 남한산성의 전문가가 됐다.

시간이 한참 흐른 서른 살 무렵 직장동료들과 같이 초복 때 남한산성에 갔다. 산성은 많이 달라지고 탐방객들도 많았다. 산성 남쪽에 성남시가 들어서고 갑자기 인구가 늘어난 탓이었다. 성남시에서 남문까지의 계곡은 닭죽을 파는 음식점들이 들어차 유원지로 변해 있었다. 산성안 마을도 많이 번화해 졌는데, 그 곳도 음식점이 대종을 이루고 있었다. 또 강산이 바뀌고 몇 년 전 광주시 책임자로 부임하자마자 고향 사랑을 외치며 직원들과 같이 남한산성답사를 나섰다.

그런데 막상 산성에 관한 내용을 설명하려 하니 아는 게 없었다. 소풍을 많이 다니기는 했지만 그 때마다 동문을 지나 산성마을을 거쳐 수어장대까지 걸어 올라가서 점심 먹고 여흥시간이 끝나면 갔던 길을 다시 들아 오는 일의 반복이었기 때문이다. 전문가로 자처한 자신이 부끄러웠다. 제일 먼저 총 길이 9.7㎞인 성곽을 걸었다. 깨끗하게 단장돼 산등성이를 따라 축조된 모습이 참 아름다웠다. 높은 곳에서는 마을의 모습이 그림처럼 내려다 보였다. 처음 신라 문무왕이 성을 쌓았고 조선의 인조2년 1624년에 지금처럼 축조를 하고 행정관청으로 유수부를 뒀다고 했다.

그런데 산성을 알아갈수록 산성에 대한 애착심이 커 갔다. 많은 사람들은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농성 40일 만에 청태종에게 항복한 치욕의 장소로 알고 있지만 그건 오해였다. 남한산성이야말로 한 번도 외적에게 점령된 일이 없었고, 꿋꿋하게 나라를 지켜왔던 호국의 상징이었다. 효종임금 때에는 북벌을 계획한 정소였고, 일제 강점기 때에는 독립운동이 은밀하게 일어났었고,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곳이기도 했다.

이제는 서울에서 가장 가깝고 대표적인 관광지로, 마음만 먹으면 아무 때나 전철과 버스, 승용차로 가기 쉬운 곳이다. 국가에 어려움이 있거나 국론이 분열되고 혼란스러울 때에는 아직도 성벽에 자취가 남아있을 조상들의 피와 땀과 눈물을 현존으로 느껴야 할 곳이다. 오늘도 나는 솔향기 가득한 수어장대를 오르며 우리 인간의 고귀하고도 보편적인 가치들을 전 국민이 한마음으로 지켜 갈 수 있기를 호국의 선조들께 기원해 본다.

/김환회 새마을운동 광주시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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