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목)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세상만사] 봄날은 간단다

 

만(滿)으로 5년 가까이 졸문(拙文)을 쓰면서 느끼는 것이 있다. 반응이 좋으리라 기대하는 것은 “영, 아니올시다.”

그러나 소재가 궁해서 끙끙거리다 대강 마무리한 것은 인기가 예상외로 폭발적(?)이다. 주로 사사(私私)로운 내용인데..... 혼자 생각이지만 우리 일상에서 겪는 것은 누구나 공감하기 때문인 것 같다.

‘약혼한 남자 못 잊어 52년 수절한 올드미스, 매일 밤 떠난 그이 못 잊어 눈물지어요’ 인터넷 신문 조그마한 구석 기사 제목이다.

21살 나던 해(1961년) 아버지가 신랑감을 골라줬는데, 남편될 사람은 군인이었다. 그 시대 대부분 그랬듯이 바로 쳐다보질 못하고 곁눈으로 슬쩍슬쩍 보았는데, 그런 대장부가 없더란다. 요즘 표현으로 하면 필이 확 꽂혀 버렸다. 약혼날 정하고, 결혼날 받고, 혼수를 받았는데 분홍 치마저고리였다. 신랑 얼굴이 어른거려 밤잠 설치기 일쑤하는 일,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런데 세상에 이런 날벼락이!!! 약혼날 하루 전에 신랑될 사람이 사고로 죽었단다. 기사 행간에는 결혼에 대한 요즘 세태의 경박함을 나무라고 있었다.

얼마 전 변호사 업계의 원로라고 자칭하는(요즘 오십 넘으면 그 계통에서는 꼰대라고 부른다며 자조했다) 친구와 나눈 이야기. 요즘 이혼 서류 가지고 변호사 사무실 찾는 사람 가운데 당사자들이 물론 제일 많지만 친정어머니가 딸 억지로 끌고 나타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했다.

솔직히 고백하건데, 결혼 초 아내가 나의 아름답고도 철학적 생활 관습을 이해 못하고, 다툰 후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기세로 가출을 하지만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해그름할 때 계면쩍은 얼굴로 돌아와서 가방을 풀었다. 그 당시야 나는 ‘그럼 그렇지!’ 기세 등등 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장인 장모가 이유도 들으려 하지 않고 호되게 나무랐던 것이다.

고전적으로 들릴지 몰라도 “부부간의 문제로 친정을 찾지마라. 이것도 일종의 크나큰 불효!!” 집에 돌아와서 펑펑 울었다. “나는 이제 갈 곳도 없는 사람”이라고…….

일방적으로 억지를 썼지만 대부분의 잘못은 나에게 있는지라 그 당시는 약간 반성을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동정심을 챙기려는 고도의 전술이 아니었는가, 의심 들 때도 있다.

나의 행세로 미뤄 아직까지 남 보기에 화평스런 가정을 유지하고 있고 또 앞으로도 그러리라 기대하지만 장인 장모의 일방적 양보가 없었다면 겁나는(?) 결과에 대해 솔직히 자신이 없다. 그런데 친정어머니가 이혼하라고 손을 끈다는 것은, 세태가 변해도 많이 변했다.

그런데 그 기사는 약혼남이라 했는데 엄격히 따지면 약혼식 전날 죽었음으로 예비 약혼남이라 할 수 있다. 요즘 이런 일 있으면 소문날까봐 쉬, 쉬 하고 덮어 두기 바빴을 턴데……. 그 뒤 아버지가 안타까워 직접 나서기도 했지만 선물 받은 분홍 치마저고리 입고 저승에서 함께 살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단호히 거절했다. 약혼이란 말 그대로 혼인을 한다는 약속이다.

친구 변호사가 말하기를 우리나라 민법에는 18세 미만 남자, 16세 미만 여자는 스스로 약혼할 권리가 없다.(물론 부모의 동의가 있으면 가능)

물론 약혼을 한 후 뚜렷한 이유 없이 오랜 시간 결혼을 미루거나 예물 교환이 있었다면 손해배상 등 법적구속이 있겠지만 그 옛날 약혼은 결혼과정의 단순한 의례라고 정의했다.

그냥 인생사 하나의 풍랑으로 간주해도 아무도 흉볼 일 없는 단순한 약속 하나를 평생 부둥켜안고 살아온 할머니 이름은 천귀남 올해73세, 사진으로 본 이마에 주름은 깊었지만 자태는 아직 고왔다. 미스(Miss)이기 때문이다. 날씨는 추워지는데 시린 등은, 아픈 무릎은 어찌할런지?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니……. 봄날은 간다.” 그래 맞다. 모두에게 봄날은 가는 법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크게 섭섭할 일 없다. 미스(Miss)천에게 위로가 될지 모르겠다.

/김기한 객원논설위원·前 방송인 예천천문우주센터 회장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