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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무작정 걷는 재미

 

요즘 걷는데 재미를 붙였다. 퇴근 후 사람들이 쏟아져 나와 아연 거리는 활기를 띄지만 양지가 있으면 어둠이 있기 마련.

노점상 부부들의 대화에도 무언가 생각할 여지가 있다. 그네들은 지금부터 무엇을 할까?

‘불편한 진실’ 요즈음 코미디 프로의 가장 인기 있는 개콘(개그 콘서트)의 코너 제목이다. 왜 진실이 불편해야만 하는가? 진실의 반대말은 가식, 거짓 등등이 있다. 그쪽 길로 생각하면 편할까?

불편한 진실이란 잘못 알고 있는 진실이 점점 상식으로 자리 잡아 가면 그건 아닌데... 식의 불편함을 느끼게 되는 모양이다. 흔히들 쌍둥이 중에 먼저 나오는 사람을 형(兄)으로 부르는데, 생명체로 먼저 잉태된 형이 늦게 나오는 법이다. 이것도 대단히 불편한 진실이다.

요즘 걷는데 재미를 붙였다. 벌써 두 달 가까워온다. 멋있게 표현하자면 산책이랄 수도 있는데, 그 경지는 아니고 무작정 걷는다는 말이 어울릴 것 같다. 그냥 빈둥대는 것 보다는 나을 듯해서 택했다.

혹시 아는 사람 만나면 길에 즐비한 꼼장어 구이 집에 소주라도 한 잔, 유혹당할까봐 벙거지 모자에 마스크까지 쓰고 보면 거울에 비추는 내 자신의 모습도 다른 이처럼 느껴진다. 코스를 정하지 않고 집을 출발해서 한 시간 정도 가면 돌아오는 시간 합해서 두 시간, 남짓 걷게 되는 셈이다. 걸으면서 참 많은 생각을 하고 참 많이 배운다.

퇴근 후 사람들이 많이 쏟아져 나와 아연 거리는 활기를 뛰지만 양지가 있으면 어둠이 있기 마련이다. 행복한 사람이 있으면 그렇지 않은 이 있다. 취객들의 다툼도 옆에서 얼추 들어보면 허투를 것 같아도 나름대로 사연이 있다. 전을 닫는 노점 과일상 부부들의 평범한 대화에도 무언가 생각할 여지가 있다.

그네들은 전을 거두고 지금부터 무엇을 할까? 이런 단순한 호기심에서 시작돼 단편소설을 만든다. 상상의 자료는 엄청나게 풍부하고, 제멋대로이기 때문에 결코 걷는 것이 지루하지 않다.

거리의 현수막도 재미있다. 누구집 차남 사법고시 합격! 커다랗게 붉은 글씨 앞뒤에 경축이란 말이 붙어있고 ‘조기축구 회원일동’ 이라고 쓰여 있다. 장원급제해 어사화 쓰고 동리를 도는 흥겨운 모습도 겹쳐진다.

나의 일처럼 즐거워하는 이웃에게 무얼 대접했을까? 합격 당사자는 그 자리에 참석했을까? 그렇다면 인사말은 무엇이었을까? 상상은 계속 이어진다. 개천에서 용 났다는 말도 떠오르고…….

눈에 거슬리는 현수막도 있다 여기에도 경축이란 말 빠지지 않지만 ‘국제 태권도 시합’ 우승자축 현수막이다. 자세히 헤아려 봤는데 120명의 이름이 깨알같이 적혀 있다. 최우수상은 그나마 좀 큰 글씨라 알아볼 수 있는데, 나머지는 눈을 가까이해야 겨우 알아볼 수 있었다.

우승명단 밑에는 ‘사랑을 가르친다 000 태권도학원’ ‘정직을 가르친다 000 태권도학원’ ‘효도를 가르친다 000 태권도학원’ ‘지성을 가르친다 000태권도학원’ 좋은 말 모두 모아 놓았구나! 그 학원의 교육 목표인 모양이다. 할 말 다해놓고도 미진한 듯 블랙벨트 아카데미(Black Belt Academy) 학생모집!

과연 국제 태권도 대회가 열렸을까? 그럼 몇 나라가 참석했을까? 혹시 중국, 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이런 다문화 가족들의 자녀가 참여한 것을 국제대회라고 이름 붙인 것은 아닐까. 그러면 정직이란 구호는 빼야 되는 것이 아닌가.

이런 저런 생각하다보면 무작정 걷는다는 것이 단순하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다.

뻔한 광고에 속는 사람이 참 많이 있다. 세계에서 제일가는 사기꾼이 은퇴를 하면서 “가장 사기 치기가 힘든 사람이 누구인 줄 아시오? 다름이 아니라 욕심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 맞다!! 우리 모두 알고 있는 뻔한 사실을 자녀들에 대한 기대감으로 불편한 진실들을 외면하는 것은 아닌지?

몰지각한 현수막 하나 더 소개 하자면 ‘내빵, 니빵, 몰빵 노래방, 선녀 대량 입하’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지나쳤다.

/김기한 객원 논설위원·前 방송인 예천천문우주센터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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