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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다시는 고향에 못 가리

 

나의 고향은 댐으로 인해 곧 잠긴다.사는 곳이야 주는 돈에 맞춰 인근도시에 집이라도 장만하면 되지만 조상들 산소는 어찌할거나!…이장축문을 손전등으로 비춰 읽으며한없이 서러워졌다.

실향민(失鄕民), 이재민(罹災民), 수몰민(水沒民), 이런 민(民)자 돌림에 해당하는 사람의 가슴앓이는 직접 당해 보지 않으면 그 아픔을 잘 모른다. 그럴 수도 있겠지 하면서 건성으로 느끼겠지만 어찌됐던 세상에 둘도 없이 딱한 사람들이다.

수몰민은 실향민을 부러워한다. 갈라진 땅이야 합치면 북쪽 끝 땅자락 어디인들 밟지 못할까마는……. 잠시 잃었다는 것은 행여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이나 있다.

매년 임진각에 모여 북쪽을 보며 눈물 뿌리는 실향민들도 통일이 되면 고향을 찾을 수 있다는 한 가닥 희망이나 있지만 수몰민은 고향이 물에 잠기면 영원히 고향을 찾을 수 없다. 누가 더 서러운지 비교해 봤자 부질없는 일!

나의 고향은 댐으로 인해 물에 곧 잠긴다. 지금은 예비 수몰민인 것이다.

어른들이 수군대기를 따뜻한 온(溫)자가 들어가면 반드시 온천 마을이 되는데, 마을 이름에 호수호(湖)자가 있으니(동호(東胡)였다) 어찌 할거나 걱정 하더니만.......결국 물에 잠기게 됐다.

참으로 수수한 소문이 많이도 돌았다. 객지를 떠도느라 고향을 자주 찾지는 못했지만, 사람들의 마음이 천성과 멀어지는 것이 눈에 띄었다.

누구는 보상금을 평균치 이상 받았는데 보상담당 직원과 뒷거래가 있는 듯하고, 누구는 둘째 아들과 같이 살 건데 맏며느리와 사이가 좋지 않고……. 본시 남의 말은 쉬운 법이다. 대부분 근거없는 말이려니...

이렇듯 촌수가 그리 멀지 않은 이마저 서로가 서로에게 의심하고 서운해간다. 고향을 잃는데다 인정과 사람마저 잃고 허물어져 간다.

나랏일에 극렬히 반대할 순 없지만 이렇게 말하면서 어디서 배웠는지 ‘생존권사수’ 머리에 붉은 띠 매고 형식적인 데모를 한 후 계면쩍은 모습으로 마을로 돌아오던 순박한 사람들이 언제부터인지 도시 변두리의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독한 사람들처럼 변해가기 시작한다.

매몰차 간다. 사는 곳이야 주는 돈에 맞춰 인근도시에 집이라도 장만하면 되지만 조상들의 산소는 어찌할거나!

큰 양반은 못 돼도 은근히 남에게 손가락질 받기는 싫어하던 사람들이라 산소 돌보는 일을 농사일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던 사람들인데 큰 걱정거리가 생긴 셈이다.

수월하게 공원묘지로 결정하면 한 시름 덜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안산(案山), 조산(祖山)은 뭣하더라도 청룡(靑龍), 백호(白虎)는 보아야겠다는 이들은 한숨이 깊다. 나의 경우도 다를 바 없었다.

물 좋고 정자 좋은 곳 없다더니만, 양지바르고 아늑한 곳조차 구하기가 힘들었다. 요즘 세상에 조상 묏자리 잘 써 발복의 꿈은 어리석은 일이다.

다행히 그럴듯한 곳이 나와 최소한의 격식을 갖추고 옮겨 모셨다. 이장(移葬)은 장사 치루는 만큼이나 힘들었다.

새벽 일곱 시 산바람은 매우 차가웠다. 이장축문을 손전등으로 비춰 읽으며 한없이 서러워졌다. 유세차(維歲次)로 시작하는 축문 뒤에 쉬운 말로 말씀드렸다.

“뜻하지 아니하게 산소를 옮기게 됐습니다. 앞으로는 물이 귀한 시대가 와서 댐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후손들을 위한 일이니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옮기는 장소가 생소하시더라도 용서해 주십시오. 우리는 고향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푸르게 변할 영주 댐에 두고 갔을 뿐입니다.”

이 동순 시인의 ‘물의 노래’를 소개한다.

그대 다시는 고향에 못 가리 / 죽어 물이나 되어서 천천히 돌아가리라 / 오늘도 물가에 잠긴 언덕 바라보고 / 밤마다 꿈을 덮치는 물 꿈에 가위 눌리니 /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수몰민이라고 한다.

뿌리째 뽑혀 던져진....... 나는 수몰민 동정보다 이해를 구한다. 수몰민의 넋두리라고 간단히 생각마시길...

/김기한 객원 논설위원·前방송인 예천천문 우주센터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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