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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시론] EBS 수능방송, 이대로 가야하나

 

정부는 올해 수능에서 약속을 지켰다. EBS 연계율 70%가 이루어졌고 쉽게 출제됐다. 뿐만 아니다. 출제위원장은 EBS 교재 변형, ‘비틀기’ 문제 출제에 대해 “이번에는 그렇게 하지 않았고, 기본개념이나 원리를 알면 풀 수 있도록 했다”, “문항과 지문이 동일한 경우도 있을 정도로 연계율 70%를 체감할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심지어 “고난도 문제 30%에도 EBS 연계 문제가 출제됐을 수 있다”고 했다. 이젠 학생들의 수능준비에 별 어려움이 없을 것 같고, 사교육 걱정도 한고비 넘긴 것 같다.

그러나 그게 결코 그처럼 훌훌 털어버리듯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도 사실이다. 우선 학생들이, 그것도 전국의 고등학교 3학년, 그러니까 고학년 학생들이, 무슨 경전(經典)처럼 EBS 교재를 펴놓고 TV 화면을 응시하고 앉아 있다는 사실이 탐탁하지 않다. 학습에는 다양한 자료와 방법이 동원돼야 한다는 기본적 원리와 상충하기 때문이다. 앨빈 토플러(1980)는 이미 오래전에 ‘시간엄수’ ‘복종’ ‘기계적인 반복학습’이 산업시대 공장모형 교육의 전형이라고 지적했지만, 학생들이 지식과 정보를 단순하게 수용하기보다 ‘정보의 바다’라고 해야 할 새로운 생활환경 속에서 그 지식과 정보를 찾아 평가·선택·조직·활용·생산·재구성하는 데 필요한 능력을 더욱 중시하자고 한 옛 교육부(이돈희, 2000)의 설명도 생생하다. 그렇게 보면 우리의 입시준비교육은 광활한 사고의 들판에서 학생들이 마음껏 탐구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극도로 제한된 울타리 안에서 누가 더 많이 듣고 암기하느냐의 싸움으로 내모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학자들은 이런 식의 입시교육은 교육과정 운영을 파행으로 몰고 가는 것이며 학교를 EBS 교재 해설기관으로 전락시키는 것이라는 뼈아픈 지적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강조하는 창의인성교육의 취지에도 어울리지 않는다. 학원에서는 아예 영어 지문은 읽지도 말고 해석해 놓은 문장만 많이 읽어 외우게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처럼 문제풀이에 치중하는 ‘평가교육’ 그것도 EBS라는 특정 교재를 외워서 수능을 치르게 하는 것을 창의인성교육이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사교육비 감축을 위한 정부의 노력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비난할 이유도 전혀 없다. 그것은 온 국민의 오랜 관심사가 됐고, 절실한 목표가 되어 있다. 그러나 그 목표가 교육의 목적을 덮어버릴 수는 없으므로 어렵겠지만 교육과정 정책과 사교육 대책을 함께 놓고 그 관점에 따라 EBS 수능방송을 전면적, 획기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지난 2월,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 EBS 등 세 기관은 함께 수능방송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개선방향을 제시한 바 있다. 지나치게 문제풀이 중심으로 구성됐었던 수능방송을, 학생들이 학교수업으로 배운 내용에 대해 EBS 교재와 강의를 통해 복습하고 심층학습을 할 수 있도록 풍부한 내용과 해설을 보강하고 개념과 원리를 상세하게 설명하도록 고치겠다고 한 것이다.

그 취지를 적극적으로 구현한다면 EBS 교재보다 훨씬 정성들여 만들고 심사한 여러 교과서들을 바탕으로 개념과 원리를 설명하고 최소한의 문제집만 제작해서 인터넷으로 무료 공급할 수도 있다. 전 학생이 모두 EBS 수능방송을 청취하게 하는 것이 이상적인 것도 아니다. 전체적인 교육은 학교가 담당하고 있고, 그 학교는 수준 높은 교육과정을 운영하면 그만이다. 가정에서 혼자 힘으로 공부하기 힘든 학생들이 학원에 가지 않아도 좋도록 EBS가 나서서 도와주는 정도가 이상적이다. 그게 튼튼하고 멋진 공교육이다.

/김만곤 한국교과서연구재단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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