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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룡문] 숲속의 휴전

다양한 매체가 드물던 30여년 전, ‘리더스 다이제스트’는 훌륭한 읽을거리였다. 거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감동적인 이야기가 주류를 이루고, 각 장마다 맨 밑에는 품격 높은 유머가 하나씩 소개돼 읽는 재미가 꽤 쏠쏠했다.

그 가운데도 성탄절이 다가오면 늘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는데,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실화라며 소개된 ‘숲속의 휴전’이다. 몇 번의 이사에도 보관했던 소책자를 잃어버려 원본을 구하느라 애썼는데 우리의 만병통치약인 인터넷이 다시한번 위력을 발휘했다.

내용은 종전을 앞두고 연합군과 독일군이 혈전을 벌이던 1944년 크리스마스 이브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12살 소녀는 독일과 벨기에 국경부근 오두막에 어머니와 함께 거주하는 독일인이다. 그런 소녀 눈에 비친 이브 날의 풍경은 대충 이렇다.

부상병을 포함한 3명의 미군 낙오병이 먼저 오두막에 들어서고 곧이어 독일군 4명이 들이닥친다. 하지만 어머니는 이들을 ‘덩치 큰’ 소년이자 아들처럼 대했고, 16살부터 23살에 이르는 어린 나이의 군인들도 어머니의 간곡한 호소에 무기를 내려놓고 작은 평화를 이룬다.

수탉 한 마리와 몇 개의 감자, 그리고 귀리 등으로 만들어진 식탁은 허기진 자들에게 마치 자신의 고향집에 있는 듯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식탁을 둘러싸고 조금 전까지 서로를 향해 총질을 했던 군인들이 모여앉아 음식을 나누는 것은 차라리 기적이었다.

“어머니가 기도를 드렸다. 귀에 익은 ‘주님이시여, 오셔서 저희들의 손님이 되어 주십시오’라는 구절을 읊조릴 때, 어머니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미국에서 그리고 독일에서 모두 집으로부터 멀리 떠나온 그들의 눈에도 눈물이 맺혀 있었다.”

“독일군과 미군들은 악수를 나누고 서로 반대 방향으로 돌아섰다. 그들의 모습이 숲 속으로 사라지고 난 다음 어머니와 나는 집안으로 들어왔다. 어머니는 낡은 성경을 꺼냈다. 나는 어머니의 어깨 너머로 그 책을 들여다보았다. 펼쳐진 곳에는 크리스마스 이야기, 즉 그리스도의 구유 속에서의 탄생을 알고 동방박사들이 멀리서 선물을 가지고 찾아온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손가락은 마태복음 2장 12절의 끝을 따라가고 있었다… 그들은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갔다.”

불민한 재주로 글을 줄여 원문의 감동이 살아나지 못해 죄스럽지만, 성탄절은 이런 날이었으면 한다. 성탄절 하루쯤은 온 세상에서 총성이 그치고 모든이에게 기적같은 평화가 임하길 희망한다.

/김진호 편집이사·인천편집경영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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