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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인문학의 위기에서

 

몇 년 전, 전국 인문학과 대학장들이 시국 선언을 했는데, 정치적인 것이 아니고 ‘인문학의 위기’에 대한 호소였다.

“오늘날 직면한 인문학의 위기가 인간의 존엄성과 삶의 진정성을 황폐화시킬 수 있음을 자각한다.” 내용이 자못 비장한데, 쉽게 말하면 돈이 되는 것과 돈이 되지 않는 이분법적 흐름이 대한민국을 망치고 있는 것에 대한 일종의 경고였다.

인문학(人文學)이란 어려운 말로 설명하자면 끝도 없겠지만 유식한 사람들은 문학(文學), 역사(歷史), 철학(哲學) ‘문.사.철’이라고 줄여서 부른다. 분야별로 조금씩 다르겠지만 돈벌이와는 확실히 거리가 있다. 흔히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듯이 옛 것을 익히되 새로움을 찾는 것, 돈을 만드는 학문은 아니더라도 인문학이 왜 필요한지는 분명하다.

유민 홍진기 평전에 “경성제국대학 한국 학생끼리, 데칸소(데카르트, 칸트, 쇼펜하우어)찬가를 만들어 숨어서 불렀다”고 했다. 고금(古今)을 살펴보아도 인문학은 지식인들에게 필수학문인 모양이다.

소 팔아서 대학 보낼 시절만 해도 살림은 변변치 않아도 책장엔 세계문학전집, 세계사상대계 이런 종류의 책을 쉽게 발견 할 수 있었는데 요즘은 ‘5년 만에 10억 만들기’ 이런 종류가 대부분이다.

재미난 통계가 있다. 서울대 97학번의 철학과, 그 해 졸업생은 모두 31명, 아직 졸업을 하지 못한 학생이 3명, 행적이 묘연한 학생이 5명인데 사법 시험 합격자가 2명, 공인회계사 1명, 나머지는 금융권, 보험회사, 공기업, 출판사에 근무한다.

모두들 철학과 출신을 기피하기 때문에 그것도 어렵시리 취직을 했단다. 사변적이어서 까다로울 것이다. 공상가들이어서 현실성이 없을 것이다. 모든 예단이 부정적이고 보니……. 하기야 내 아들이, 조카가 철학을 전공하고 싶다면 아마 십중팔구...

철학은 가난으로 가는 지름길-마르크스가 자본론을 쓰면서 “돈에 관한 글을 쓰면서, 이렇게 돈이 없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탄식을 했다. 가난 때문에 그의 자식 2명은 자살로 인생을 마감했다.

“세상에 악처로 소문난 소크라테스의 부인 크산티페도 결코 나쁜 여자가 아니다. 가난을 싫어하는 평범한 여자일 뿐!” 이렇게 변명하는 사람도 있다.

전설의 영화감독 고(故) 하길중 감독이 만든 바보들의 행진-주제가가 송창식이 부른[왜 불러], [고래사냥]기억나시리라. 주인공 병태와 영철이도 철학도였다. “우리는 바보예요. 바보병신쪼다, 여덟 달 반이예요.” 극중 대사는 처절하도록 허무했다.

얼마 전 신문기사에 [문사철(文史哲)이 약하면 한국은행 힘들다] 이런 기사가 눈에 확 띄었다.

“가족관, 결혼관에 세대 차이가 나는 이유를 논하라.” 2012년 한국은행 신입행원의 필기시험 제목이다. 이런 문제는 이제까지 없었단다. 은행장께서 인문학의 실력으로 행원을 뽑겠다고 결심을 하고 이런 문제를 냈단다. 관행에 따라 준비했던 지망생들은 매우 당황했단다.

어찌됐던 참으로 신선한 발상이다. 이것 하나로 인문학의 부활이라고 과장된 생각은 금물이겠지만 돈벌이 안 되는 학문, 가난의 지름길, 취직 안 되는 학과에서 약간 벗어난 것만 해도 어딘가?

스티브 잡스도 이런 말을 남겼다. “애플은 인문학과 기술의 교차점에서 살아남았다.”

8명의 전직 국가원수 가운데 두 사람이 철학과 출신이다. 이승만, 김영삼 대통령. YS가 철학과 출신이라고? 어울리지 않는다고? 그럴 리 없다고? 엄연한 사실이다. 그 땐 전시학교 시절이기 때문에 원하면 모두 입학 시켜주었다고? 그것까진 모르겠다.

/김기한 객원 논설위원·前방송인 예천천문우주센터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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