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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거룩한 작별인사

 

“이미 시작할 때, 반드시 끝날 때가 있음을 유념한다.” 이처럼 신(神)은 간곡하게 타일렀지만 이 말을 따르는 사람보다 외면한 사람들이 더 많았다. 미련 때문이다. 또, 이 미련은 구차함을 만든다.

건강, 재력, 출세, 사랑....... 미련을 버린다는 것은 평범한 사람에겐 어려운 숙제다. 몹쓸 병으로 시한부 처분을 받은 사람들의 생명에 대한 미련은 참으로 처절하다. 매우 합리적인 사람이었지만 온갖 처방에 우왕좌왕 하다가 끝내는 또렷한 유언 한마디, 제대로 남기지 못하고 안타깝게 떠난다. 투병 중 하늘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항의하기도 한다. “숱한 사람 가운데 하필 나에게!!!!” 억울해하는 것이 당연하다.

강영우 박사란 분이 있다. 최초란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분인데, 대표적인 것이 [미국 최초 시각장애인 고위 공직자가 된 분] 어렴풋이 기억하시리라. 미국 연방정부의 공무원은 450만 명, 그 중 2천500명이 대통령이 임명하는 자리, 그 가운데서도 500명은 상원의 인준을 받아야 하는데 여기를 통과하면 이름 앞에 존경의 뜻이 담긴 ‘honorable’ 이란 단어를 붙여 호칭한다. 영국의 경(sir)과 같은 예우이다.

강영우 박사의 퇴직 전 직책은 부시대통령 시절 상원비준을 받아야 하는 최고공직자(백악관 정책 차관보)였다. 1944년생이고 보니 우리 나이로 68세, 인생은 육십부터란 기준으로 보면 아직 한창이다. 아메리칸 드림의 주인공.

우리 어깨를 으쓱하게 해주던 이 양반이 얼마 전 친구들에게 작별 편지를 보냈다. “앞으로 저에게 허락된 시간이 길지 않다는 것이 의료진들의 의견입니다. 여러분들이 저로 인해 슬퍼하시거나 안타까워하지 않으셨으면 하는 것이 저의 작은 바람입니다.”

[세상과 이별을 고하는 아름다운 작별편지] 췌장암으로 한 달밖에는 더 살지 못할 것이란 진단을 받았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야속함은 전혀 보이질 않는,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어떠한 구질함도 엿볼 수 없다. 세속에 미련을 두지 않는 담담한, 천연스러움은 당당함마저 엿보인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것이 예쁜 꽃 한 송이를 그냥 바라보는 것이라 했다. 그런 행복을 그는 어릴 때(초등학교 시절) 축구공에 맞아 빼앗겼다. 소식을 들은 어머니마저 충격에 세상을 떠나고 소녀가장이던 누나마저 돈벌이 하느라 과로로 죽는다. 온통 주위는 깜깜하고 당연히 원망만이 가득하였지만…….

맹아 학교에서 연상의 천사를 만난다. 자원봉사자로 1년, 누나로 6년, 약혼녀로 3년, 아내로 34년……. 대학에서 봉사활동을 위해 맹아학교를 방문한 것이 인연이 됐다. 훗날 책에서 부인은(석은옥 여사) 이렇게 회상한다. “하나님께서 저 불쌍하고, 초라해 보이는 맹인학생이 십년 후 내 신랑이 된다고 알려 주었다면 나는 멀리 도망갔을 것이다.”

솔직하고 솔직한 이야기! 맏아들은 백내장 관계수술을 30만 번 이상 집도해서 워싱턴 포스트가 선정한 [2011년 최고의 의사]에 선정됐다. 둘째는 오바마 대통령의 법률고문, 두 며느리 모두 박사, 결국 한집에 박사가 5명인 셈이다.

고생하면서 성취한 일가를 이룬 사람은 속세에 미련이 많기 마련이다. 당연하다. 고비 고비마다 혼연의 사연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달 남은 삶....... 여러분 은혜에 감사” 거룩함마저 느낀다.

오래돼서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성당의 ME(Marriage Encounter) 과정에 참석한 경험이 있다.(가톨릭 신자건 아니건 불문) 내일 죽는다고 가정하고 유서 쓰는 시간이 있는데, 사방이 조용한데 오직 훌쩍거리는 소리뿐. 모두 회한의 눈물을 흘리며 자성을 탓한다.

인생에 가정은 없다지만……. 모두 후회될 뿐이다. 하기야 최선을 다해, 아름답게 살았다고, 후회 없이 살았다고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지난해 여러 가지 미련은 거두어야겠구나..........

*어리석고 모자란 글, 독자들의 너른 이해를 구한다.

/김기한 객원 논설위원·前 방송인 예천천문우주센터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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