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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문화] 세월이 약(藥)이겠지요

 

프랑스의 대표적인 거리극 행사인 오리악 축제에서 필자가 경험한 문화적 충격을 다시 되새겨 본다. 오리악 축제는 인구 3만명에 불과한 프랑스 외곽 중부지역에서 펼쳐지는 행사로 축제기간 4일 동안 약 15만명이 다녀가는 행사로 400개 극단이 참여하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거리극 축제이다. 실내·외에서 다양하게 진행되는 축제 중에는 주변 나라에서 오는 많은 방문객들로 지역경제에도 막대한 기여를 하고 있다.

천막극장을 비롯해 그 지역의 정원, 학교, 공장, 거리 등이 온통 공연장으로 변해 관객들을 맞이하는데, 필자가 눈여겨 본 아트 서커스가 중심지역 학교의 체육관에서 개최됐다. 가장 인기가 있는 공연으로 표는 이미 매진, 프랑스와 일본인 친구와 기대감을 갖고 기다리는데, 연기자의 공연 준비 미흡으로 약 1시간 정도 공연이 지체됐다.

그런데 이 1시간 동안 전혀 관객들이 동요가 없었다. 다만 기다리는 동안 주최 측에서 문을 열다가 바로 닫자, 관객들이 휘파람으로 재치 있는 항의를 하고 기다리는 관객들은 서로 웃음을 터트렸다.

사실 필자는 문화적인 충격을 받았다. 체육관에서 진행되는 공연이고, 축제 속에 포함된 공연이기 때문에 관객들의 관용을 해준 것이겠지만, 극장과 축제의 기획자로서 수년간 일을 해 온 필자로서는 그들의 관용과 여유가 무척이나 충격으로 다가왔다. 프랑스의 극장문화와 예술가, 그리고 관객들의 관계는 역사가 깊고, 사회적으로 예술가에게 지원되는 비용에 대한 합의가 일찍 이뤄졌다. 또한 국민총생산의 5%를 예술문화진흥과 복지에 투자하고 있는 예술가의 나라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은 아닐까.

필자는 20년간 줄곧 예술경영 분야에서 일을 했다. 전공 분야이기 때문에 집착에 가까운 애정을 가지고 있다. 참으로 우리나라에서 예술경영이라는 역사는 짧다. 지역의 아트센터가 만들어지는 것도 최근의 일이고, 경쟁하듯 만들어지는 아트센터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익히 알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근대 극장의 설립은 홍순언 씨가 경영했던, 일제강점기인 1935년 개관한 지금의 문화일보에 자리했던 동양극장이었다. 주로 ‘홍도야, 울지 마라’와 같은 신파극을 상연했고 그 후 홍순언 씨가 죽자 경영난으로 문을 닫았다.

그동안 우리나라 국민들은 문화 예술을 소비할 여유가 없었다고 생각한다. 일제강점기에서 열악한 문화자본 그리고 해방 후 혼란기 등 격동의 현대사는 국민들에게 문화보다는 생존의 경제 속에서 고단한 생활을 강요했다. 문화 예술에 대한 본격적인 관심은 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분출했고, 1990년대 일본의 문예회관 설립 붐에 영향을 받아 우리나라에서 지역 자치단체 중심으로 많은 문예회관들이 건립됐다. 일본은 1980년 당시 오히라(大平) 수상이 ‘문화생활의 선진국 진입’을 강조해 총무청의 주도로 지방 문예회관 설립이 진행됐고, 1990년대에는 설립이 능사가 아니라 소프트웨어가 더 중요하다는 공감대로 바탕으로 문예회관 설립의 문제점이 대두되고 있었다. 바로 우리나라의 경우는 일본의 문제점을 반면교사(反面敎師) 삼아 극장경영에 참고할 필요가 있으며, 이는 앞으로 문예회관이 ‘애물단지’가 될 것인가, 혹은 지역의 ‘매력덩어리’로 자리매김할 것인가의 기로가 될 것이다.

필자가 재직하고 있는 아트센터와 인력과 문화교류 협정서를 조인한 홋카이도연극재단에서 주최한 ‘극장은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심포지움에 발제자로 발표도 하고, 삿포로에 있는 100여 개 극단 관계자 분들을 만났다.

이 때 ‘어린이가 자라나는 극장’으로서 아트센터의 역할과 기능, 관객개발에 대한 의지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얘기했다. 먼 장래를 보는 심모원려(深謀遠慮)을 통해 지속적으로 사업방향을 잡고 이를 실천하면 세월이 약이 돼 튼튼한 지역관객 기반 속에 성장하는 아트센터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 그들도 많은 공감을 하는 것 같았다. 문화가 하루아침에 정착된 사례는 없기 때문이다.

/조경환 부평아트센터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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