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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야 한다

 

월급쟁이 삼대 기쁨이 승진해서 택호 바뀌는 것, 집 평수 조금씩 늘리는 것, 그리고 정년 퇴직할 때 동료들이 진정으로 손수건 꺼내서 눈물 훔치는 것이라 했다.

지난 주말 충주 수안보에서 하루 저녁을 보냈다. 네 가족모임이지만 이름은 거창하게 푸를 청에 소나무 송, 청송회(靑松會)! 지난번 만났던 장소가 경북 청송군이어서……. 밤늦은 생맥주집에서 즉흥 작명했다. 고향, 자란 곳, 성장환경, 출신 학교도 제각기 다른 무연(無緣)의 모임이다.

정부미(공무원) 출신 2명, 일반미 2명의 신년 모임이지만 그 가운데 막내 한명이 승진(대한민국에서 제일 잘 나가는 그룹)을 했기 때문에 축하연 성격이 짙었다. 얼굴 마주 본 것은 1년쯤 되지만 한 달에 안부전화는 두서너 번 하는지라 만나자말자 거침없이 화기가 돌았다.

우선 기념패가 전달됐다. “능력과 인품으로 보아 당연한 일이지만 한해 끝자락, 승진의 낭보는 우리를 기쁘게 했다. 앞으로 더욱 적선하시고, 내외 늘 푸르시길. 우의(友誼)를 담아서”

원체 성실한 사람이라 이미 임원이 됐지만 한 단계 승진을 하지 않으면 멀지 않아 백수가 돼야 할 절박한 시점이었다. 임원이야 임시직원의 줄인 말이다. 퇴직금은 엄청 많다고 소문났지만 나이로 보아……. 아직은 성실 하나가 밑천인데 정의(正義)(?)는 살아있을까? 비관적인 감이 왔지만 당당히 승진 인사명단에 이름 석 자를 올렸다. 그 회사가 세계적인 회사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새삼 깨달았다. 월급쟁이 삼대(三大) 기쁨이 승진해서 택호(宅號) 바뀌는 것, 사는 집 평수 조금씩 늘리는 것, 그리고 몸 담았던 직장을 정년퇴직할 때 동료들이 진정으로 손수건 꺼내서 눈물 훔치는 것이라 했다.

저녁을 먹은 후 대한민국 국민코스인 노래방으로 갔다. 기분과는 달리 날씨는 매우 혹독했는데, 노래방은 얼음장이었다. 하도 추워서 투덜댔더니 방금 기름을 주문했단다. 휑하니 스무 평도 넘는 곳에 손님은 유일하게 우리 한 팀뿐, 아마 며칠 사이에 우리가 유일한 듯 했다.

다른 곳으로 옮기고 싶었지만 주인아주머니의 불안한 눈빛에 그냥 주저앉았다. 기쁨을 나누는 자리가 아니었으면, 매몰찼을지도 모를 일. 이것도 적선(積善)이다.

좌장격인 친구가 하모니카를 꺼냈다.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가세가 기울어지자 조바심으로 검정고시로 상고(商高)에 진학한 이 친구! 직장생활을 하면서 대학을 야간으로 다니다 행정고시에 합격을 해서 직업 공무원으로 최고 직급인 관리관(管理官)으로 퇴직했다.

어릴 때 그리 하모니카가 탐이 났단다. 그러나 돈이 없었다. 이미자의 ‘울어라 열풍아’부터, 미국민요 ‘켄터키옛집’, 레퍼토리는 과거로 돌아 갈 수밖에 없었다.

술에 약간 젖었지만, 진지한 모습. 정수리 머리칼은 날로 겅성드뭇해지는데 요즘도 색소폰에, 중국말을 배우고... 그래 계속 젊게 살아라! 그의 자녀들은 지금이야 복된 가정의 일원이지만 아버지의 소년시절 암담했던 환경을 짐작이나 할까?

그 날의 또 다른 주인공은 머지않아 일반미가 되는데 지방의 기관장으로 부임한지 불과 8개월 만에 서울에서 불렀다. 능력도 그럴듯하지만 참 무던한 사람, 모임복장까지 통보하는 세심함도 있다. 그가 부른 노래는 ‘산포도처녀’, ‘울고 넘던 박달재’, “누가 나와 같이 함께 울어 줄 사람 있나요, 누가 나와 같이 함께 따뜻한 동행이 될까”, 최성수의-동행-노랫말은 시의 적절(?)했다.

아내가 부른 노사연의 사랑 “그때는 몰랐었죠. 당신이 힘든 것조차 고마워요 오랜 시간 끝없는 당신의 사랑” 가사가 마음에 들어 신용카드를 주면서 마음껏 쓰라고 호기를 부렸지만 아침에 크게 후회할 것 같아 십분도 안 돼 어물쩍 회수했다.

부인네들도 어려워 보이는 임재범의 ‘고해’ 같은 노래도 척척 잘도 불렀다. 앙코르를 여러 번 요청하고 나니 손바닥이 얼얼했다. 추억 쌓기― 주량(酒量)과 식량(食量)은 거의 가득이었지만 포장집에 들렀다. 거기에도 손님은 우리뿐, 인상 좋은 안주인을 위해 푸짐하게 주문했다. 훗날 “무척 재수 좋은 날”이라고 기억하리라.

어제가 이미 아쉬운 과거가 되었다. 화향(花香)은 천리(千里), 인향(人香)은 만리(萬里)라 했으니 어쨌든 사람은 꽃보다 아름다워야 한다.

/김기한 객원논설위원·前 방송인 예천천문우주센터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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