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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시론] 아이들이 보내는 우리사회의 위기신호

 

어두운 골목길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리 다니지 않는 길은 아니다. 평소에도 왕래가 제법 있었고, 우리 집까지는 직선거리로 불과 100여 미터. 앞에서 뻐끔대는 담뱃불이 조금 찜찜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지름길이다. 조심조심 걸어 검은 그림자를 지나니 뒤통수가 서늘하다. 그때였다.

“야. 가진 돈 다 내놔.” 검은 그림자가 불쑥 내 팔을 붙들었다. 무슨 오기였을까. 갑자기 대범해졌다. “뒤져봐. 난 아무 것도 없어.” 피식 웃음소리를 들은 것 같다. 주먹이 날아온 것도 바로 그 순간. 정말 눈앞에 파란 불꽃이 튀었다. “뒤져서 돈이 나오면 한 대씩 맞는다.” 제법 싸늘하다. 겁에 질려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한 놈이 내 주머니를 뒤졌다. 그 손길이 익숙하다. 고등학교 다니는 동네 선배 같다. 까까머리를 한 중학생인 나에게 고등학교 선배는 하늘이었던 옛날이었다. 게다가 상대방은 둘이다. 고스란히 당할 수밖에 없었다. 마침 어른이 옆을 지나 갔다. 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이 자식이. 목소리 안 낮춰?” 이상한 낌새를 채면 그냥 가지 않으리라는 믿음으로 계속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것도 잠깐. 다시 녀석들의 주먹이 날아왔다. 어른은 종종걸음으로 곁을 지나쳤다. 모른 척 지나친 어른이 더 야속했다. 한참 동안 얻어맞고 풀려난 나는 환한 가게 앞에 이르러서야 북받치는 울음이 터져 나왔다.

“학생, 왜 그러니?” 담배를 사러 나온 아저씨가 나를 불렀고 자초지종을 듣고는 우리 집까지 데려다 주셨다. 그 분이 누구인지 알 수 없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내게 가장 큰 위로가 됐던 것은 내 얘기를 들어 주었고 따뜻한 말을 건네주는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요즘 학교 폭력이 최대 관심사이다. 여기저기 많은 사람들이 해결책을 제시한다. 다 맞는 말이고 옳다. 하지만 문제는 모두들 아이들을 ‘문제아’로 보고 ‘교육 대상’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아이들은 ‘문제아’가 아니다. 지나치게 폭력 성향을 지닌 아이들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선천적으로 폭력적인 사회는 없다. 폭력은 사회 구성 요소들의 역학 관계에서 발생하고, 그 사회가 추구하는 우선 가치에 따라 확산 여부가 결정된다.

우리 아이들은 잠수함에 실린 토끼와 같다. 잠수함에 산소가 부족하거나 위기 상황이 오면 가장 먼저 알아채기 때문에 위험 신호 감지용으로 태운다는 토끼 말이다. 아이들은 이 사회의 폭력지수를 먼저 느끼고 힘줘 우리에게 위기 신호를 보내고 있다. 그들이 처한 위험 요소가 무엇인지 살펴야 하고 우리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공포에 처한 아이가 온전하게 신호를 보내지 않을 것이다. 여러 방법이 있을 것이고 자기가 처한 상황에서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보낼 것이다. 어른 입맛에 맞는 기호로 보내기는 힘들 테다. 가정에서 부모에게, 친척에게 보내는 기호가 있을 것이고, 학교에서 교사나 친구에게 보내는 신호가 있을 것이다. 적극적으로 아이들이 보내는 신호를 확인해야 한다. 우리 아이가 보내는 신호가 무슨 의미인지 알고 공감하고 거기에 맞게 치유를 해야 한다. 그것이 폭력의 사슬을 끊는 방법이다.

모른 척 종종걸음으로 지나가지 말고 아이들의 신호에 귀 기울이자. 엉뚱하게도 인권조례를 걸고 넘어지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인권은 ‘기본권’으로 접근해야 한다. 일종의 생존권이다. 마치 우리가 숨 쉬는 것처럼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다. 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귀한 존재로 살아갈 권리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 아이들에게 새로운 권리를 주는 것인 양 착각하고 있다. 이미 있는 것을 이제야 겨우 찾아낸 것에 불과하니 어른들인 우리가 오히려 미안하다고 말해야 할 텐데 전혀 그런 낌새는 보이지 않는다. 엉뚱한 소리를 늘어놓기보단 아이들이 보내는 신호를 귀 담아 듣고 더 늦기 전에 우리 사회에 닥친 위기를 벗어날 방도를 찾을 때다. /김덕년 안산선부고 교사 경기도 진학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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