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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무명찬가<無名讚歌>

 

적우란 가수가 ‘나가수’에 등장했다. 먼저 출연한 유명 가수들이 그를 무시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출연 횟수가 몇 번 늘자 저음은 설득력 있고 고음은 한(恨)을 토하는 것 같았다.

한때 가수들과 일 년에 여섯, 일곱 차례 공연 작업을 한 적이 있다. 팀을 구성할 때 반드시 고려할 점이(분류 방법이 매우 모호하고 비인간적이지만) 소위 일류, 이류, 삼류를 골고루 섞어야 한다. 일류 뒤에는 이, 삼류를 그리고 다시 일류. 이런 식으로 배열해야만-기승전결(起承轉結)-관중들이 지루하지 않은 법이다. 반드시 최고의 스타가 마지막을 마무리한다. 끝이 좋아야 모든 것이 좋다.

그런데 소위 일류들은 다음 스케줄이 바쁘다는 핑계로 모두 앞 순서를 원한다. 사실은 뒷 순서면 대기할 동안 이, 삼류와 섞여서 본의 아니게 시간이 남아서 노닥거리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고, 비단잉어가 붕어하고 놀 수 없다는 우월감 때문이다.

그 당시 몇 명, 일류가수에 대한 느낌은…, “톡 하면 터질 것만 같은”-이 가수의 노래를 꺾어 부르는 장기는 타의추종을 불허한다. 그러나 고집도 세고 스텝들에게 매우 고압적이다. 하지만 무대에 오르면 착 달라붙는 경상도사투리로 “언니들 잘 계셨어예” 하면서 애교를 떤다. 참 얄미웠다. “안녕하세요? 또 만났군요.” 이 가수는 생긴 건 오목조목한데 출연자 대기실에서 퍼질러 앉아 새우깡을 안주로 소주잔을 기울이는 소탈하고, 대범한(?) 모습이다. 술친구로는 최고! “빙글 빙글 도는” 이 예쁘장한 가수는 혼자 연습을 하다 인기척이라도 나면, 얼굴을 무릎에 파묻는 순진형이지만 일단 무대에 오르면 동서남북을 헤맨다. 외모와는 달리 매우 여성스러웠다. 그러나 실상은 아무도 모른다. 대중들은 속고 있는 셈이다. 서로 마주치면 선배님, 후배님 하면서 화기애애한 척하지만 내심은 치열하다.

이야기가 너무 빙 둘렀다.

얼마 전 ‘나는 가수다’가 잠시 중단한다는 발표를 했다. 나의 고향은 정신문화의 수도라고 자랑하는 칼라 시대에, 흑백의 귀함을 내세우는 도시라 현직(顯職)을 거쳐간 사람은 많은데 도대체 조금이라도 알려진 가수는 없다. 어느 날 동향 출신이라는 적우(赤雨)란 가수가 ‘나가수’에 등장했다. 붉은 비-가수 이름도 이상했다. 사연이 있겠지…. 하여간 호기심으로 지켜봤다. 한마디로 불쌍했다.

먼저 출연한 내로라하는 가수들이 의식적으로 적우를 무시하는 느낌을 받았다. 처음 출연했을 때 출신이 어떻고 하면서 뒤숭숭한 소문이 그녀를 깎아 내렸을 때는 더욱 초라했다. 대기실에서 카메라도 적우는 그냥 훑어지나갔고 중간 인터뷰도 형식적이었다. 그녀의 답변 역시 교과서적인 “최선을 다할 뿐”, 시선은 내리깔고 억지로 웃음지어 탁한 목소리로 내뱉는 멘트. 저럴 바엔 뭣 하러 출연했을까 하는 한심하고 괘씸한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출연 횟수가 몇 번 늘자 저음은 설득력 있고, 고음은 한(恨)을 토하는 것 같았다. 얼굴이나 춤으로 하룻밤 사이에 인기를 얻은 가수들은 흉내 내지 못할 원숙감이 넘쳤다. 특히 “집 떠나와 열차타고 훈련소로 가는 날” 이렇게 시작되는 ‘이등병의 편지’는 코끝이 시큰했다. 내 노래를 들어 보아라. 내가 너희들에게 꿀릴게 무엇이냐? 피를 토하는 절규 같았다. 갈수록 좋았다. 록 가수가 알록달록한 표범바지를 입고 살랑살랑 안무를 곁들이는 애교를 부렸을 때도, 그녀는 블랙 앤 화이트의 노멀한 복장과 선 보러 가는 듯 정숙한 헤어스타일을 고수(固守)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흉내란 구차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웬걸, ‘나가수’가 종방(終放)이 되자 겁먹은 듯하지만 노래로 한풀이하던 그 모습을 볼 수가 없구나. 그래! 어디서 조용히 칼을 갈고 닦아서 우리 앞에 다시 당당히 나타나려무나. 이제까지 설움을 한 순간에 탁 털어버리고 당신과 같은 어둡고 검은 터널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저 같은 사람도 있잖아요.” 이렇게 위로와 용기를 주거라! 당분간 ‘나는 가수다’가 아닌 ‘너만 가수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터이니….

/김기한 객원논설위원·前방송인 예천천문우주센터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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