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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칼럼] 보이지 않는 고릴라

 

재미있는 실험을 보여주는 비디오가 있다. 이 비디오는 한 무대 위에서 여러 명의 사람들이 두 개의 팀으로 나눠 각각 자기의 팀원에게 농구공을 어지럽게 주고받는 것을 찍은 것이다. 실험 감독관은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한 팀을 지목한 뒤, 과연 몇 번의 패스가 성공했는지를 맞추어보라고 문제를 낸다. 비디오가 상영되고 얼마가 지난 후 감독관은 비디오를 멈추고 실험 참가자들에게 질문을 한다. 패스 성공 횟수를 묻는 질문에 참가자들은 거의 모두 정확한 답을 이야기한다. 그러자 감독관은 다시 묻는다. “화면에서 고릴라를 보셨습니까?” 참가자들은 대부분 어안이 벙해진다. “무슨 고릴라?”

감독관은 비디오를 처음부터 다시 같은 속도로 재생한다. 두 팀이 각각 서로의 팀원에게 농구공을 패스하는 사이, 검은 털옷으로 고릴라 복장을 한 사람이 무대 중앙으로 천천히 나타났고, 심지어는 자기를 봐달라는 듯이 손으로 가슴을 두드리는 동작까지 한 후 무대 한쪽으로 지나가는 모습이 분명히 찍혀 있었다. 미국의 유명한 인지심리학자인 크리스토퍼 차브리스의 이른바 ‘투명 고릴라’ 실험에서 대부분의 실험 참가자들은 고릴라를 보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이 실험은 인간의 인지능력의 한계를 보여주는 실험이다. 사람들은 보이는 것을 다 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느 것에 집중하느냐에 따라 정작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매일 일어나는 우리 주변의 여러 가지 사건들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그대로 느끼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보고 경험한 것만이 유일한 진리라고 믿으면서 정작 중요한 핵심을 놓치고 만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경기도의회와 경기도교육청 간의 자존심 싸움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경기도의회 입장에서는 업무보고를 거부한 경기도교육청 모 간부의 행위는 1천200만 경기도민을 대변하는 대의기구인 경기도의회를 경시한 사건으로 그대로 좌시할 수 없는 큰 사건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최종 책임을 지니고 있는 경기도교육감으로부터 공식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할 수 있다. 하지만 경기도교육청 역시 경기도의회의 권위적인 사과요구는 교육자치를 훼손하는 의회의 폭거라고 강하게 반발하면서 한 치도 양보하지 않는다. 결국 갈등의 골은 점점 깊어지고 좀처럼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 3월 임시회에서 다룰 예정인 교육청 추경예산은 손 한 번 못 대보고 내년 경기도내 3곳의 고교평준화 시행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경기도의회와 경기도교육청은 경기도의 교육행정을 도민의 입장에서 서로 견제와 감시를 통해 효율적으로 잘 이끌어가는 수레의 양쪽 바퀴와 같다. 두 바퀴가 서로 크기가 다르거나 어느 하나라도 펑크가 나면 결국 수레는 목적지를 이탈하고 다른 길로 가버린다. 현재 두 기관의 자존심 대결은 같은 팀원끼리 주고받는 농구공의 패스에만 주목하다가 정작 중요한 고릴라를 놓치는 꼴이 아닐까?

화면을 다시 천천히 틀어보자. 분명 고릴라는 자기를 봐달라고 애처로울 정도로 커다란 손짓을 하고 있다. 이래도 안 보이는가, 아니면 못 보는 척하는 것인가.

/박용진 도의원(민·안양·기획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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