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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김없이 사실대로 말하는 것이 고백(告白)이다. 그러나 1백년 전의 고백은 그런 뜻이 아니였다. 요즘 우리들이 잠자는 시간만 빼고 노상 접하고 있는 광고(廣告)를 ‘고백’이라 했다. 그게 무슨소리냐 하겠지만 어디까지나 사실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신문 ‘고백’은 1886년 2월 22일자 <한성주보>에 실린 ‘덕상세창양행고백’(德商世昌洋行)이었다. 덕상은 독일 상인을 뜻하고, 고백은 광고를 의미한다. 광고 전문은 다음과 같았다.
‘저희 세창양행이 조선에서 개업하여 호랑이·수달피 ·검은 담비·흰담비·소·말·여우·개 등 여러가지 가죽과 사람의 머리가락·소·말·돼지의 갈기털, 꼬리·뿔·발톱, 조개와 소라, 담배, 종이, 오배자, 옛 동전 등 여러가지 물건을 사들이고 있습니다. 독일상사 세창양행이 조선에서 개업하여 외국에서 자명종시계, 들여다 보이는 풍경, 뮤직박스, 호박, 유리, 각종 램프, 서양 단추, 각색 서양 작물, 서양 천을 비롯하여 염색한 옷과 선명한 연료, 서양 바늘, 서양 실, 성냥 등 여러가지 물건을 수입하여 물품의 구색을 맞추어 공정한 가격으로 팔고 있으니 모든 손님과 상인이 찾아와 주시기 바랍니다. 아이나 노인이 온다해도 속이지 않을 것입니다. 바라건대 저희 세창양행의 상표를 확인하신다면 거의 잘못이 없을 것입니다.’
자그만치 118년 전의 ‘고백’인데도 별로 낮설지 않게 느껴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아마도 상품의 다양성, 신용보증, 노소를 가리지 않는 서비스 정신이 두루 베어 있어서 일 것이다. 그런데 1900년을 전후해서 일본 신문의 영향을 받게 되면서 ‘고백’은 밀려나고 ‘광고’가 안방 차지를 한 것이다. 일제는 우리 전래의 용어까지 없애버린 셈이다. 지금 서울에서는 ‘한국 신문광고 100년展’이 열리고 있다. 역사의 유물이 된 ‘고백’을 만나보는 것도 무의미하지 않을 것이다.
이창식/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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