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목)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세상만사] 바람직한 권리(?)에 대한 명상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부인, 분노, 타협, 우울의 단계를 거쳐 마지막이 수용·체념이라 했다… 인공호흡기 중단은 포기를 의미하며 자식이 부모를 포기한다는 것은 사회적 규범으로 용서받을 수 없다. 삶의 질은 외면하고 효성이란 외면적 명분을 따랐다.

사람은 태어날 때, 줄을 때 모두 자유의지로 선택할 수 없다. 창조주로 부여받은 잠정적 권리라고 차갑게 정의(定義)하는 사람도 많은데……. 모멘토 모리(Momento-mori) 라틴어인데, 직역(直譯)을 하면 “죽음을 생각하라” 삶을 즐기려면 항상 죽음이 쫒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멋진 말이다. 그러나 동기가 없으면 지나치게 되고 곧이어 후회한다. 그러면, 죽음은 모든 이에게 공평한데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맞아야 행복(?)할까? 우리나라는 한 해에 약 18만명이 만성질환을 앓다가 사망하는데, 임종 직전에 인공호흡기를 달고 사망하는 환자가 3만명 이상이라는 통계가 발표됐다. 결국 마지막 귀한 시간을 기계에 의존한 채 세상을 작별하는 셈이다.

내가 겪었던 병상과정이다. 중환자실, 항암치료 다시 중환자실, 결국은 인공호흡기 의사들을 만날 때마다 고작 최선을 부탁할 뿐이다. 여기에서 최선이란 조금이라도 더, 이런 의미의 생명의 연장이다. 가끔 돌아오는 아버지 의식, 그러나 통증 때문에 공허한 말만 주고받을 뿐이다. “제가 누군지 아시겠어요?” 인공호흡기 중단은 포기를 의미하며 자식이 부모를 포기한다는 것은 사회적 규범으로 용서받을 수 없다. 삶의 질은 외면하고 효성이란 외면적 명분을 따랐다. 얼마나 고통스러우셨을까!

죽음에 이르는 정상적인 과정이 부인(내가 왜?), 분노(하필 나에게), 타협(그래, 할 수 없지 뭘), 우울(정리해야 할 일도 많은데, 그리고 사후(死後)세계는 도대체 어떨까)의 단계를 거쳐 마지막이 수용(신의 뜻 혹은 운명)또는 체념이라 했다. 이런 과정을 거처야만 평온한 죽음을 맞이하는데 그 당시만 해도 항암치료를 받으면 타협의 단계마저 거치지 못하고 의식이 가물가물해졌다.

요즘 ‘임종 선택권(臨終選擇權)’이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일부 의사들은 이제까지 의학은 통증을 치료하는데 초점을 맞췄지만 지금부터는 고통을 이해하고 보살피는 것이 바람직한 의료인의 모습이라고 주장한다. 너무나 귀한 시간을 부질없이 보낸 경험 때문에 적극 찬성하고 싶다.

올해 미국에서 노부부의 죽음에 관해서 사회적인 관심을 모은 사건이 있었다. 인생 말년에 병마에 사로잡혀 참을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리게 되면 스스로 목숨 줄을 놓겠다고 일찍이 계획한 부부가 있었는데, 동기는 부모들이 말년에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또 지독한 병수발에 지친 경험이 있다. 소위 ‘임종 선택권’은 우리에게 있으니 자식들에게 일체 간섭을 하지 말라고 엄명을 했다. 금슬이 좋은 부부였지만 세월을 비켜 갈수는 없는 법. 흉스러운 방법보다 단식을 해서 임종 선택권을 지키기로 한다.

철학자 쇼펜하우엘도 “자발적인 금식은 무욕성(無慾性)의 최고의 단계”란 말을 했다. 자녀들이 번갈아 지키는 가운데 단식 10일 되던 날 아내가, 그 이튿날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 불경스럽지만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줄초상이 난 것이다. 상주(喪主)들이 기자회견을 하면서 “부모님 모두 당신들이 원하는 대로 인간으로서 품격을 유지한 채 평화로이 세상을 떠났으니, 축하해주시기 바랍니다.” 요즘 표현대로 하면 참으로 쿨한 가족들인데, 임종 선택권을 찬성하지만 만약 나의 경우, 단식을 하는데 자식들이 물끄러미 쳐다보고만 있으면 어떤 기분일까?

얼마 전 일이니 기억하시리라- 이제는 신화가 된 애플의 스티브 잡즈가 앙상한 얼굴로 스탠포드 대학에서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이 죽음(Death is very likely the single best invention of life)”이라 했다. 이왕이면 바람직한 방법까지 제시를 했더라면 ……. 몇 살 차이나지 않는 사촌형이 예후(豫後)가 좋지 못한 췌장암을 견디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 평화로운 체 하는 일상에서 생(生)과 졸(卒)에 대한 명상을 잠시 해보았다. 슬슬 꽃피는 봄날이지만, 마음은 아직 춥다.

/김기한 객원 논설위원·前방송인 예천천문우주센터 회장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