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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진정한 늑대

 

동물학자들이 말하길 늑대는 평생 한 마리의 암컷만 사랑한다. 암컷을 위해 목숨바쳐 싸우는 유일한 포유동물이다. 암컷과 새끼에게 먹이를 양보하고 자신은 마지막에 먹는다. 그런 의미에서 김주영 선생은 진정한 늑대였다.

이렇게 오랫동안 인연이 계속될 것이라고는 짐작도 못했는데……. 소설 쓰는 김주영 선생을 처음 만난 것은 이십년 넘는다. 방송밥 먹을 때인데 ‘이런 인생, 저런 인생’이란 제목의 출향 인사들의 인생사를 더듬어 보는 프로그램의 PD(연출자)와 MC(사회자)로 만났다. 독특한 문체, 민초들을 주인공으로한 길게 이어지는 역사 소설, 이미 ‘화척’과 ‘객주’로 문단에서 독특한 위치에 올랐지만 먼발치에서 은근한 독자-단순한 관계였다.

백두산 천지가 등장하는 사이다 광고의 모델로 흐드러지게 웃는 모습은 익숙했다. 표정도 그러했지만 성격, 목소리 하나같이 경상도 토박이였다. 사정없는 권주(勸酒), 사양하는 법 없는 주도(酒道) 호쾌했지만, 날카로웠다. 경험에서 나오는 고상한 의식은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권위를 스스로 만든다. 남의 이야기를 구김살 없는 아량으로 열심히 듣고 있다가 비위에 상하면 여지없었다. 교양 있는 늑대(?)였다. 늑대라면 일반적으로 느낌이 별로지만 그건 잘 몰라서 하는 소리!

동물학자들이 말하길 늑대는 평생 한 마리의 암컷만 사랑한다. 그러다 암컷이 먼저 죽으면 가장 높은 곳에 올라 슬픈 목소리로 애절하게 운다. 늑대는 암컷을 위해 목숨까지 바쳐 싸우는 유일한 포유동물이다. 늑대는 사냥을 해서 얻는 것이 있으면 암컷과 새끼에게 양보를 하고 제일 나중에 먹는다. 멋지지 않은가? “남자는 모두가 늑대”라고 속 검고 야비하다고 몰아붙이지만 모름지기 현명한 여자란 늑대 같은 남자를 찾아 나서길 권하는 바다. 이런 의미에서 선생은 진정한 늑대였다. 가족의 범위 안에 단골 식당의 안주인은 물론 주방장, 심지어 허드렛일을 하는 아주머니까지 포함시킨다. 너무 넓어서 지나칠(?)때도 있다.

큰 키에 어느 자리에서도 주눅 들지 않지만 객주에 등장하는 민초들에게는 봄비에 수양버들이다. 정이 뚝뚝 넘친다. 다시 못 갈 어느 국수집에 가서도 2, 3천원을 수고비로 손에 쥐어 주어야만 직성이 풀린다. 그리고 좌중에 이야기가 꾸밈이 없다. 대부분 글 쓰는 사람들은 뱉어놓은 말을 조금만 정리하면 바로 문장이 되는데……. 가끔은 이해하기 어려운 논리로 상대방을 설득하려 하는데, 처음부터 그런 의도가 전혀 없으니 좌충우돌, 동서남북으로 쭉쭉 뻗어 나간다. 문명(文名)이 그 정도이면 체면 차릴 자리도 있는데 가끔 아슬아슬 할 때도 있다. 도움을 주고, 술 사주는 이한테 바른 소리 거침없이 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며칠 전 “외국 며느리들 불러서 조졸한 잔치”하려 하니, 꼭 참석하라는 부름을 받았다. 조졸한 잔치가 아니었다. 베나감사회(베풀고, 나누고, 감사하는)란 8명 모임의 명예회장이 김주영 선생이란다. 비릿한 비밀스러운 대목도 대강 알고 있는데, 이건 금시초문이었다. 인기 있는 가수도 몇 명 나오고, 외국 며느리가 140명인데 모두에게 이름 있는 회사 제품의 카메라가 전달되고 그 중에 모범가정 8명에게는 친정 갈 비용이 전달됐다. 그리고 푸짐한 점심!!!!

살아 있을 때 번 돈 다 쓰고 가겠다고 죽을 때 입는 수의(壽衣)에 주머니를 만들지 않겠다는 베나감사회원을 보고 감격했고, 함께 두둥실 춤을 추며, 며느리가 예뻐 죽겠다는 시어머니, 시아버지 표정을 보고 감격했고, 최소한 스무 살 차이는 날 것 같은 늙은 신랑의 싱글벙글거리는 표정을 보고 감격했고, 감격투성이었다. 시골청년이 문학 하나에 매달려 오늘까지........ 그 정도면, 재미없는 천국보다 재미있는 지옥을 선택하겠노라 늘 말씀했지만, 좋은 곳 기다리고 있을 터이니.

/김기한 객원 논설위원·前방송인, 예천천문우주센터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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