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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스현장] 성폭력 예방, 인식의 변화가 필요

 

우리나라에서 정조의 의미는 여자가 목숨을 내 놓고라도 지켜야 하는 절개로 여겨져 왔다. 10여년 전만 하더라도 형법에서는 성폭력의 대표적인 범죄인 강간이나 추행을 ‘정조에 관한 죄’로 분류했다. 가해자에게 성폭력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물으면서도 피해자인 여자도 꼭 지켜야 하는 것을 지키지 못한 사회적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었던 것이다. 아직도 성폭력에 대한 제대로 된 사회적 공감대가 미흡하다. 예를 들어 ‘강간은 여성들의 정숙하지 못한 옷차림이 원인이다’, ‘남자들은 순간적인 성 충동을 이기지 못한다’, ‘여자가 끝까지 반항하면 강간을 할 수 없다’, ‘모르는 사람에게서 물리적 폭력이 동반돼야 강간이다’라는 식의 편협된 고정 관념이 남아 있다.

그러나 경찰에 신고되는 성폭력 사건을 살펴보면 전혀 반대의 현상을 볼 수 있다. 모르는 사람보다 아는 사람에게 성폭력을 당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성적으로 매력 있는 여자만이 아니라 아동이나 노인 피해자도 많다. 가해자들의 우발적인 성 충동도 있지만 대부분은 계획적으로 이루어진다. 또 성 폭력 사건을 조사하다 보면 술과 연관된 경우가 많다. 우리 나라는 아직도 사법 관행에 보수성이 있어 만취한 생태에서 저지른 범죄자는 한정치산자로 취급돼 형을 감경하기도 한다.

성폭력에 병들게 하는 또 하나의 이면은 음란물이다. 가해자들을 조사하다 보면 대부분이 음란물에 심각물에 노출돼 있다. 인터넷은 물론 방송, 영화, 연극, 책, 길 거리의 광고 유인물 그리고 주택가까지 번져 있는 퇴폐업소 등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음란물로 접할 수 있다. 우리 나라처럼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길거리나 주택가에서 누구나 언제든지 음란물을 접할 수 있는 나라는 없다. 성폭력 예방을 위한 우리사회의 의지를 볼 수 있는 단면이다.

여성을 비하하고 남성을 우월시하는 수 많은 유교적 속담과 한자 성어들이 아직도 우리의 의식에 가득 차 있다. 겉으로는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그런 말을 하느냐고 하지만 여성에 대한 편견과 고정 관념은 남성들은 물론 여성들마저도 똑같이 갖고 있다. 필자는 사회활동을 하고 있는 많은 여성들이 밖에서는 남녀 평등을 외치지만, 집에만 들어가면 어쩔 수 없는 어머니로 돌아가 자녀들에게 ‘아들다움과 딸다움’을 가르치는 것을 많이 봐 왔다.

경찰관들이 성폭력 사건을 조사하다 보면 황당한 일을 많이 겪는다. 고개를 숙이고 조사를 받고 있는 고등학생 아들에게 어머니가 다가와 “남자가 그럴 수도 있지 괜찮아, 내가 다 해결해 줄 테니까 걱정마”라고 위로하는가 하면, 피해자인 딸을 가진 어머니는 “동네 창피해 죽겠다. 너 죽고 나 죽자”며 몸과 마음에 큰 상처를 입고 고개를 떨구고 있는 어린 딸의 머리채를 잡아 흔들고 소리를 질러댄다. 그러고는 가해자 측에서 제시하는 돈 몇 푼을 받아 쥐고는 얼른 고소를 취하해 버린다. 우리 나라 형법에는 강간이나 강제 추행 등 대부분 성폭력 사건은 피해자가 고소를 취하하면 공소 제기를 못한다. 결국 억울함을 호소하는 딸의 울부짖음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가해자와 합의하는 부모들 때문에 공소권 없음으로 수사는 종결되고 피해자인 어린 소녀는 가슴에 씻을 수 없는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우리 사회에 남자와 여자가 같은 울타리 속에 존재하는 한 성폭력에 대한 특단의 예방책은 없다. 그러나 성폭력을 여성의 인권 문제로 접근한다면 최소한 지금보다는 더 늘어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두 개의 날개가 아름다운 비행을 보장하듯 남자와 여자라고 하는 두 날개가 균형 감각을 찾을 때 우리 가정과 사회는 아름다운 비행을 할 수 있다. 남자와 여자가 어느 쪽에 종속돼 있는 것이 아니라 같은 위치에서 인간답게 존재 할 권리가 있다는 의식들이 우리의 내면에 녹아날 때 성 폭력이라는 단어는 자연스레 사라질 것이다.

/김선우 경찰청 대변인실 온라인 소통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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