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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배반의 장미

 

선비 정신을 가장 큰 덕목으로 삼던 조선 시대에 비공식적인 금기 행동이 있었으니, 야밤에 오른손잡이가 왼손으로 편지 쓰는 것과 당파(黨派)가 다른 집 하인을 불러 좋은 음식과 용돈을 건네는 것이라 했다. 떳떳하지 못한 모함성 투서를 하자면 자기 신분이 노출되지 않도록 필체를 바꿔야 하기 때문에 왼손으로 글을 쓰고 모두 잠든 한밤중에 작업을 해야 남에게 들키지 않는다. 사이가 안 좋은 사람들의 정보를 얻자면 재물에 굶주려 있는 상대방 하인들에게 미끼를 던져야 한다. 익명(匿名)의 비겁함, 인간성의 취약 그리고 유혹, 모두 비열하다.

서양에서 상대방에게 가장 모욕적인 말은 다름아닌 ‘유다’같은 사람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유다는 예수님을 돈 때문에 팔아넘겼기 때문이다. 비난의 이유는 배신 때문이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면 더욱 아픈 법이다. 인간사 배반이 드문 시절이 잠시라도 길게 있었냐만, 요즘 들어 주위에 배반의 장미가 더욱 활짝 핀 것 같다. 공정거래위원회(公正去來委員會)라고 있다. 대체로 일반 사업자들과는 무관하지만 대기업이나 독과점 품목사업을 하는 기업에겐 저승사자보다 더 무섭다. 몇 년 전 공정거래위원회에서 감사 업무하는 것을 가까이서 지켜본 적이 있는데, 사람들이 차갑기 얼음장보다 더했다.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고 난 뒤 그 자리에서 계산을 하고 영수증을 요구하고, 얼굴이 좀 익었다고 인사라도 건네면 고개를 싹 돌려버리는 그야말로 피도 안 통하는 사람들 같았다. 잘 보이려고 식사 후 양치하라고 새 칫솔을 화장실에 비치했는데, 거들떠보지도 않고 자기들 가지고 온 것을 사용하고 심지어 치약도 준비해왔다. 오후 간식용으로 과자를 들여보내도 손도 안됐다. 규정이라 하지만 한편 야속했고 멋쩍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국무총리소속의 장관급 중앙행정기관이자 합의제 준사법기관이다. 독립기관으로 누구의 간섭이나 지시도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업무를 수행한다.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라면업체가 담합해 과징금을 1천100억가량 부과했다는 뉴스에는 귀가 번쩍 띄었다. 1천억이라!...... 감이 잘 오지 않았다. 공정거래법상 담합과징금은 관련매출액의 10%, 담합기간이 9년, 그 동안 매출액을 곱하면 그 정도 나오는 모양이다.

그런데 공정거래법에 부당한 공동행위의 사실을 자진 신고한 자와 증거제공 등 조사에 협조한 자는 과징금을 경감 또는 면제한다고 돼 있다. 무슨 국장이라는 사람이 발표할 때 조사과정에서 이실직고한 삼양사는 소위 리니언시(Leniency)한다고 어려운 말을 썼다. 리니언시란 말의 뜻은 관용, 자비를 뜻한다. 말이 그럴 듯 했지, 쉽게 말해 배반의 댓가인 셈이다. 똑같이 야밤에 왼손으로 작당을 했지만 1천억이 넘게 벌금을 내야 하는 회사와 단돈 십원 한장 내지 않는 회사!

로마제국과 중국 봉건사회의 밀고자에 대한 보상은 범죄자 재산의 4분의 1이다. 희한할 만큼 똑같다. 동서양 어느 사회, 어느 시대이건 밀고자, 대단히 수지맞는 장사인 셈이다. 그러나 넘쳐나는 밀고자로 인해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더 많았다. 참으로 인간의 심성이 얼마나 고약한지!!! “뒤늦게 위법사실을 후회하고 조사에 적극협조를 했으므로” 대부분 이런 식으로 발표하는데 그 사람들 정말 후회하고 반성을 할까? 애써 감싸주는 모습이 유치하게 들린다. “재수 없이 들켜서 우선 발등의 불이나 끄고 보자.” “까짓 것 욕 얻어먹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잊히겠지.” 동업자들의 비난보다는 엄청난 과징금의 부담에서 벗어나겠다는 조건부 반성이 아닐까?

그 회사 제품을 먹을 때마다, 그 회사의 기름을 넣을 때마다 배신, 배반의 씁쓰레한 추억이 떠오를 것이 분명하다. 기업에 대한 이미지는 오래가는 법이다. 미끼를 던져 배반을 권장하는 사회, 배신을 변명해주는 국가! 어느 것 하나 마땅치 않다. 그러나 엄연히 우리는 그런 사회에서 밥 먹고, 잠자고 생활하고 있다. 미끼란 영혼을 팔도록 유혹하는 음침한 그림자! 멀리해야 한다. 의(義)로서 맺은 관계는 오래가지만 이(利)로서 엮인 관계는 한시적이다. 딱 맞는 말이다. 그리고 배반의 장미가시는 엄청나게 날카로롭다는 사실!

/김기한 예천천문우주센터 회장 객원 논설위원·前방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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