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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양심선언이 이젠 지겹다

 

양심선언을 사전에 찾아보면 ‘감추어진 비리나 부정을 양심에 따라 사회에 알리는 일, 대게 권력 기관이 저지른 비리나 부정을 사회적으로 폭로하는 선언’ 이렇게 설명한다. 이처럼 된다면 어느 전직 대통령이 자주 사용하는 표현대로 ‘정의가 강물처럼 흐를 것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이 거룩한 양심선언이 하필 선거 때만 되면? 왜 하필 인사철을 앞두고? 왜 하필 주주 총회를 앞두고 봇물처럼 터질까? 우습다. 선거가 두 번 있는 올해는 양심선언 강조기간인가?

지학순 주교의 양심선언, 1974년 지금부터 약 4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그 때, 그 양심선언은 하나의 충격이었다. “소위 유신 헌법은…….폭력과 공갈과 국민투표라는 사기극…… 반대한다.” 이렇게 밝히고 말미에 “이외에 어떠한 말이 나오더라도 나의 진정한 뜻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 타의에 의한 강박에서 나온 것임을 알아주기 바란다.” 서슬 시퍼런 정권에다 대놓고 폭력, 공갈, 사기, 대담한 표현을 했다. 더구나 앞으로 다른 이야기가 있으면 고문이나 다른 방법으로 훼절됐으므로 결코 내 생각이 아니다. 선을 그어버렸다. 참으로 양심선언이란 말은 피 묻은 수의(壽衣)를 입은 순교자나 할 수 있는 거룩한 말로 느껴졌다.

1978년 10월 공급 받은 불량감자 씨앗 때문에 농사를 망쳤다고 사람들을 모아 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피해 보상을 요구하던 오모 씨가 보름 가까이 기관원들에게 납치당해 온갖 곤욕을 당했다고 양심선언을 했다. 대한민국의 가장 오지에서 감자농사를 짓는 한낱 농부를...... 참으로 대한민국은 깜깜한 나라라고 개탄하면서 전국 곳곳에서 진실규명을 요청하는 데모가 벌어졌다.

한편에서는 그 양심선언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도 있었다. 평소 농사일에 관심도 별로였으며 읍내 출입이 잦은, 정치적 색체가 강한 사람이라고 흠 잡았다. 그 사람의 양심선언은 몇 번인가 오락가락 했다. 당국의 발표는 울릉도로 애정행각을 다녀왔다고 증인을 내세워 뒷받침했다. 시간에 따라, 장소에 따라, 입장에 따라 수시로 왔다 갔다 해도 되는 걸까? 일부에서는 어설픈 시골농민운동가의 소영웅적 해프닝으로 간주한다. 아직도 진실은 행방불명인 셈이다.

2007년 10월 <삼성을 생각한다>의 저자 김 모 변호사, 거대한 삼성그룹을 향해 불화살을 날리는 것을 보고 정말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모두들 찬사를 보냈지만 시간이 흐르자 만(萬) 개를 가진 사람이 추가로 열 개를 탐내다 뜻을 이루지 못하자, 너 죽고 나 죽자 식의 자폭(自爆)을 한 것이 아닌가? 이런 의심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가 받은 급여도 엄청난 고액이었고, 그가 하던 사업도 지도층 인사가 선택하기에는 부적절했다. 건드려선 안 될 부분이지만 가정도 일반인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 사람들은 혹독한 비판을 계속한다. “진즉에 그토록 정의롭다면 현직에 있을 때 사회적 고발을 해야지 단물 다 빨아먹은 후에” 그 책에 이건희 회장의 71번째 생일 파티에 관한 글이 있다. 회장의 테이블에는 천만 원이 넘는 포도주가, 손님들에겐 그보다도 싼 포도주가 놓여 있었고, 회장 일가들에게는 냉장 푸아그라, 그리고 손님들에게는 냉동 푸아그라를 대접했단다. 보통 사람들은 냉동과 냉장 푸아그라의 가격과 맛의 차이를 모른다. 그리고 단숨에 포도주 가격을 알 수 없다. 더 많고, 약간 없음의 차이지, 김 변호사란 사람도 그 나물에 그 밥이라고 혹평한 사람도 있었다.

세월이 흘러 그 사람이 어느 광역시 교육청의 감사 담당관으로 근무할 때 규정에도 없는 관사를 제공받아 여러 사람 입에 또 올랐다. 복수혈전이 목적이 되는, 그리고 양심선언이 영업 마진이 된다면 지학순 주교가 저 세상에서 화가 나서 벌떡 일어날 것이다. 말(言)을 바꾸고 말(馬)을 바꾸는 계절이 곧 다가온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할 때 백성들은 모름지기 분노해야 한다. 거리에 분분(紛紛)하게 떨어지는 벚꽃처럼, 솔직히 양심선언이 이젠 지겹다.

/김기한 객원 논설위원·前방송인 예천천문우주센터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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