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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그리운 선생님

 

교육감 두 분이 검찰청과 법원에 자주 출입을 하고 있는 것을 보니 요즘 ‘교육감들의 수난시대’ 인가보다. 당사자의 말 들으면 억울한 것 같고, 당국의 말 들어보면 큰 죄 지은 것 같기도 하고... 선의와 범죄는 종이 한 장 차이라는 사실도 새로운 발견이다. 그래도 믿을 것은 교육계밖에 없는데 그 쪽마저 바람 잘 날 없으니... 한심하다.

싱거운 친구가 가끔 이런 말을 한다. “자네 죽으면 묘갈명(墓碣銘) 빡빡 할 걸세, 방송밥 먹었으니 언론계, 기업 맡아서 경영 해보았으니 재계, 한 때 대학 겸임교수도 걸쳤으니 교육계, 참으로 화려하네!” 가시 있는 칭찬이다. 여러 군데 넘나든 것은 뒤집어 보면 제대로 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말도 된다. 전 종목 출전이란 허술한 경력이다. 선친도 한때, 그리고 집안 가까이 교직에 근무한 사람이 열 손가락 넘는지라 어디 가서 교육가족이라 해도 큰 타박은 받지 않을 것 같은데... 하지만 교육 자체에는 관심이 없고, 교육계(?)에는 관심이 많다.

맏아이가 다니던 백년전통의 명문 고등학교의 운영위원장을 3년 했다. 돌이켜보면 학창시절에 교무실 출입이 잦았다. 폐타이어로 만든 슬리퍼에 얼굴을 맞는 체벌은 엄청나게 혹독했다. 맞을만한 짓을 많이 했기 때문에 이 거룩한(?) 경력은 스스로 대외비로 간직했다. 하여간 완전 자격미달이지만, 피치 못할 이유로 거절할 구실이 없었다. 당시 여러 가지 사건으로 교육계 전반이 비난받자 학교운영위원회를 구성해서 객관성을 확보하자는 목적이었다. 따라서 막강한 권한이 주어졌다.

교육감을 뽑는 간접선거에 투표권도 주어졌고, 거래 주유소 선정(전교생 기숙사 시설이므로 겨울 한철 거래금액은 엄청났다), 급식 업체선정, 업자들의 입장에서는 학교 운영위원장이란 필수 공략 대상이었다. 꼼꼼한 것은 소인배, 대범한 것은 대장부로 착각하던 혈기 방장하던 사십대, 아예 학교 서무과(요즘 행정실)에 막도장을 맡겨 놓았다. 한편으로는 하나하나 따졌다가 까다로운 아버지를 둔 자식이라고 불이익을 당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쓸데없는 걱정도 있었다.

어느 날 교장 선생님이 꼭 드릴 말씀이 있다고 저녁시간에 만나자고 했다. 국립대학 사범학과를 나오셨고 겸손하고, 자상하고, 인자하고, 긍정적인 분이셨다. 그러나 막 활동을 시작한 전교조 선생님들로부터는 많은 비난을 받았다. 야간에도 기숙사 순찰을 돌면서 선생님들을 닦달하는 등 “무조건 일등만 알아주는 더러운 세상”에 일조한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제 이야기 절대 고깝게 듣지 마십시오. 내일 단체급식업소 선정을 하는데 그 업체와 위원장님 친분이 있다고 소문이 났습니다. 아주 엄격하게 심사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오해 받을만한 개연성이 있었다. 열심히 변명을 했더니, 이해하면서 대책을 제시했다. 학급당 한 명씩 학생대표를 심사에 참여시키고 시식품은 업체를 나타내는 어떤 표시도 하지 말고 그것도 못 믿으니 모두 눈을 가리고 소위 블라인드 테스트를 하자고 했다. 그리고 덧붙이기를 “위원장님은 방법만 제시하고 심사에 빠지시는 것이 어떨런지요? 저도 빠지겠습니다.” 엎드려 절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젠 이 방법이 전국으로 퍼져 제도화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만약 그때 충고가 없었더라면……. 지금 생각해도 머리가 쭈뼛 설 일이다.

며칠 전 교장선생님의 퇴임 후 보내주신 수필집 <청진아재와 인절미>를 다시 꺼냈다. 참으로 인품이 골고루 배여 있었다. 공진영 교장선생님은 우리 아이의 스승뿐 아니라 나에게도 스승이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스승의 날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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