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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시론]공부야 잘 가라

 

‘사또마나부’ 교수는 공부와 배움의 차이를 ‘만남과 대화’의 유무에 있다고 했다… 공부가 무엇과도 만나지 않고 아무 대화 없이 수행되는데

비해 배움은 사물이나 사람, 사항, 다른사람 혹 자기 자신과 만나고 대화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Nationalism이란 주제에 대해 역사적 사건들을 중심으로 이 Nationalism이 어떻게 표출되는가를 A4 10페이지를 쓰라”- 스웨덴 고 2기말고사 국어, 역사, 사회 통합 문제.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에게 이런 문제를 출제했다면? 이명박 정부 들어 처음 도입된 국가수준학업성취도평가(일제고사)가 오는 26일 5번째로 치러진다. 교과부는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를 교육정책 연구·수립에 반영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실제 학교 현장에서는 교육과정이 파행적으로 운영되는 등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어 논란이 커지고 있다. 문제 풀이 중심의 획일적인 교육이 창의성을 말살하고 있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교육이 학생의 학력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문제는 학력의 본질에 대한 왜곡된 인식이 교육정책의 기저에 깔려 있다는 것이다. 학력은 ‘교육을 통해 얻은 지식이나 기술 따위의 능력, 교과 내용을 이해하고 그것을 응용해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능력’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창조하는 능력, 창의성이 학력 개념의 핵심이요, 본질임을 알 수 있다. 학력은 지적 능력과 정의적 능력의 조화를 통해 완성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학력은 지적 능력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왜곡돼 있다. 시대가 급변하고 있다. 창의성은 미래 생존의 문제다. 지식의 양도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그 많은 지식을 우리 두뇌에 저장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2020년이면 인류가 쌓아 온 지식의 양이 73일이면 두 배로 증가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미국 정부는 앞으로 10년 내 현재의 직업 80%가 소멸될 것이란 보고서를 발표했다. 호주 정부는 2020년 은퇴자는 무려 40개의 일자리를 경험할 만큼 평생직장의 개념은 아예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우리 교육이 어디로 가야 할지 근본적 물음을 제기해야 할 때다.

정보화 시대의 한복판에서 우리교육의 현실은 산업사회가 요구하는 교육을 하고 있다는 자괴감을 지울 수가 없다. 산업사회는 소품종 대량생산과 효율성을 추구한다. 따라서 산업 현장에 필요한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서는 단순지식의 암기와 반복 훈련을 통한 생산기술의 습득이 시대적 요청이었다. 압축성장을 위한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기 위해 정착한 암기 위주의 교육, 문제 풀이 중심의 교육이 시대의 변화에도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사실 90년대 본격적인 지식정보화 사회로의 이동에 맞춰 우리교육도 수행평가, 논술평가, 열린교육 등 시대 변화의 요구에 부응하는 교육을 추진해왔다. 이제 우리는 후기지식기반사회를 맞이하고 있다. 미래학자 다니엘 핑크는 “미래는 정보화 사회에서 컨셉과 감성의 사회로 변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미래의 인재가 갖춰야 할 6가지 역량으로 디자인 능력, 스토리텔링 기술, 조화, 공감, 놀이, 의미를 제시했다. 또 사또마나부 교토대 교수는 <배움으로부터 도주하는 아이들>이라는 저서를 통해 공부와 배움의 차이를 ‘만남과 대화’의 유무에 있다고 했다. ‘공부’가 무엇과도 만나지 않고 아무런 대화도 없이 수행되는 것에 비해, ‘배움’은 사물이나 사람이나 사항과 만나고 대화하는 행위이며,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감정과 만나고 대화하는 행위이고, 자기 자신과 만나고 대화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우리교육은 여전히 혼자서 하는 암기식 공부에만 몰두하고 있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창의성을 말살하는 공부의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을 뿐이다. 여기엔 감동도 재미도 공감도 있을 리 없다. 이제 창의성의 개념을 확장하고 학력의 본질 회복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우리나라 학생들에게 가장 취약한 것이 고등정신능력이다. 고등정신능력은 비판적 사고력이며 창의성 문제와 직결된다. 일제고사를 고집하는 교과부의 퇴행적 정책을 우려하는 교사들이 스스로 해법을 찾아 나섰다. 경기도교육청 소속 교사들의 교과연수년 직무연수가 그것이다. 과거 이론 중심의 연수 패러다임을 바꿔 현장 중심의 연수를 기획해 시행하고 있다. 184개 강좌에 5천684명의 교사가 교실 수업의 혁신을 통한 창의지성 교육을 위해 함께 토론하고 학습하며 집단지성의 힘을 키워가고 있다. 이제는 바꿔야 한다. 양적 학습에서 질적 학습으로, 양적 평가에서 질적 평가로 바꾸기 위해 교육과정을 재구성하고 교수학습 방법을 혁신해야 한다. 그래야 희망이 있다. 교육의 본질 회복을 위해 배움을 일으켜야 한다. 이제 공부와 결별해야 한다. 공부야 잘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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