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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향]수집은 삶에 활력을 불어 넣는 행위

 

수집을 즐겨하는 이들이 주변에 많다. 무언가를 심도있게 수집한다는 것은 그리 용이한 일이 아니다. 아무런 가치도 없는 행위로 끝나고 말 수 있기 때문이다. 욕망이 없으면 본래 수집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수집이 개인의 욕심에 갇혀도 안 된다. 많은 이들에게 기쁨을 나눠줄 수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 수집의 으뜸은 누가 뭐라 해도 간송 전형필이다. 그를 조선의 국보와 혼을 지킨 수문장이라고 일컫는다. 그가 수집한 문화유산은 국보와 보물 등의 국가지정문화재로 선정됐다. 문화사적으로도 가치가 높다. 수집이 단순한 사유로 끝이 난다면 그것은 사장(死藏)이다. 한낱 저장에 지나지 않는다.

수집 대상의 범위는 끝없이 확장된다. 습벽인 수집도 병이라 봐도 무방하다. 다듬이돌과 맷돌, 화폐, 닭과 오리 등 동물모양이나 악기완구, 등잔, 기와, 잡지 창간호, 연적, 문진, 미니카, 찻잔 등등 이런 물건들은 손쉽게 모을 수 있어서 사람들의 마음을 기울이는 듯 보인다. 미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사회적으로까지 의의를 찾을 수 있으면 좋다. 통일성 없이 그저 잡스러운 수집으로 끝나면 안 된다. ‘모으다’와 ‘많다’는 똑같은 모습이다. 한두 개의 물건을 가지고는 수집이라 할 수 없다. 수집이란 많이 모은다는 뜻이다. 오랜 세월의 더께가 있으면 더욱 좋다. 이것들을 보고 있노라면 이유를 알 수 없이 마음이 마냥 흐뭇해진다. 이런저런 상상력으로 수집품에 의미를 부여해온 우리 인문적 전통의 두터운 사유 한 자락도 펼쳐본다.

며칠 전에 모 TV방송국에서 ‘살맛나는 세상’ 프로 제작을 위해 나를 찾아왔다. 40여년 간 수집해온 ‘병따개’를 취재하기 위해서다. 100여 개 나라에서 수집한 5천여 점의 아기자기한 모양의 병따개다. ‘왜 쓸모도 없는 병따개만을 그렇듯 부지기수로 모아대는가’ 하는 것이 PD의 첫 물음이었다. 반드시 쓸모가 있어 모으는 것이 아니다. 마음을 유달리 사로잡는 무언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병따개는 식탁 위에 놓이는 작은 ‘생활예술품’이다. 집안 냉장고에 닥지닥지 붙은 자석식 병따개를 생각하면 안 된다. 그것은 단지 병을 따는 도구일 뿐이기에 그렇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속담이 있다. 야외에서나 술자리에서 치아로 병을 따거나 나무젓가락, 혹은 수저로 ‘뻥’소리 나게 따는 이들이 있다. 모로 가면 안 된다. 제대로 가야 된다. 우리의 잘못된 문화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병을 따기만 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한다면 할 말이 없다. 품격 있는 행동은 아니다. 수집이라는 행위는 어지간히 깊은 인연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남이 보기에 하잘것 없는 병따개를 모으는 난 ‘어엿한 수집가’는 아니다. 돈이 안 되는 물건을 수집하기에 그렇다. 타산은 인간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종교를 믿는 이들은 자신의 전 재산을 온전한 정신에서 신에게 바친다. 타산적인 인간은 그런 행위를 하지 못한다. 수집품 하나하나는 나의 친근한 동반자다. 무언가 자신을 몰입하게 하는 대상이 존재한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나는 해외여행을 다닐 때마다 기념품점에서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이 ‘병따개’를 만난다. 늘 뭐랄까 따스한 정감을 느낀다. 건져 올릴 때 환희를 느낀다. 수집이란 심리적으로 흥미요, 생리적으로 성벽(性癖)이다. 아무것도 모른 채 잠들어 있는 이들에게 수집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느 해 모차르트 탄생 150주년 기념 오프너가 오스트리아 빈에 진열됐다는 짤막한 기사를 읽었다. 마침 그곳을 가는 이에게 부탁해 모차르트 흉상이 새겨진 병따개를 목록에 올릴 수 있었다. 구하려는 마음에는 끝이 없다. 수집은 물건을 향한 정애다. 수집은 인간의 욕망과 이어져 있다. 수집품의 가치를 수호한다. 또 그 가치를 널리 현양한다. 뜨거운 마음의 힘이다. 없어도 괜찮을 대상에 정신을 놓고 빠져드는 것이 수집의 흥미로운 점이다. 나에겐 삶의 활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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