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후죽순 생기는 ‘방’…소통 공간 옛말 ‘쾌락만 추구’
우후죽순 생기는 ‘방’…소통 공간 옛말 ‘쾌락만 추구’
  • 천의현 기자
  • 승인 2012.06.17 20:08
  • 댓글 0
  • 전자신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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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기형적인 ‘방’ 문화

한국을 상징하는 문화가 바로 방 문화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집 밖으로 나가는 순간 노래방, PC방 등 무수한 간판들을 만날 수 있을 만큼 방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또 놀이도 방에서 시작해 방에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아이들은 방과 후 운동장에서 노는 대신 PC방으로 향하고, 직장 회식에서 노래방은 빠지지 않는 단골 코스가 됐다.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들이 가장 인상깊게 생각하는 룸쌀롱과 요정, 고시원과 도서실, 도서관, 허그방, 키스방, 대딸방, 오피방, 전화방, 성인 PC방, 최근에는 귀청소방까지 다양한 방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는 실정이다. 방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이 살거나 일을 하기 위해 벽 따위로 막아 만든 칸’이다. 하지만 방은 더 이상 건물에 부속된 구조물이 아니라 독립적인 공간이 됐다. 방의 사전적 의미에 또 다른 정의를 추가할 때가 된 것 같다. 방의 전성시대를 맞아 한국의 방 문화에 대해 살펴봤다.



-방 문화의 변천사

▲옛날부터 방 문화는 존재했다. 대표적인 것이 기방과 사랑방 문화다. 기방은 양반들이 기생의 장단에 맞춰 유흥을 즐기거나 은밀히 성(性)을 논하는 곳이었다. 또 기방정치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정치적 막후 교섭이나 거래가 행해지기도 했다. 현재의 유흥 문화를 낳은 원류는 바로 기방 문화였다.

사랑방은 집에서 남자 주인이 기거하는 곳이자 손님을 맞는 중요한 공간이었다. 유학을 장려하고 경전을 연구하는 풍조가 성행했던 조선시대에는 독서와 토론·예술활동 등의 사랑방 문화가 발달했다.

근대부터 1980년대까지 한국의 방 문화를 주도한 것은 복덕방과 만화방이었다. 동네마다 하나씩 있었던 복덕방은 단순히 부동산 거래를 알선하는 곳이 아니었다. 동네 어르신들이 모여 장기를 두며 친목을 도모하는 장소였고, 마을의 대소사를 의논하는 공적 공간이었다.

1984년 ‘부동산중개업법시행령이 제정공포’되면서 부동산 거래를 전문적으로 하는 중개업소에 자리를 내주고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하기까지 복덕방은 마을 문화의 중심지였다.

만화방은 학교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만나는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의 장소였다. 죽치고 앉아 낄낄거리며 보았던 만화책의 묘미는 만화방이 아니면 느낄 수 없었다. 보고 즐길 것이 많지 않았던 당시, 만화방은 청소년들의 문화적 욕구를 채워주는 보금자리였다.

지금과 같은 거대한 방 문화를 만든 효시는 1990년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한 노래방이다. 이후 스타크래프트 유행에 힘입어 PC방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세포가 분열하듯 새로운 방들이 꼬리를 물고 나타나기 시작했다.

웰빙 바람을 타고 찜질방 등이 크게 증가했고 전화방, 스크린골프방, 인형체험방, 성인PC방, 셀프 메이크업방, 스트레스 해소방 등이 잇따라 등장했다.

-왜 방을 좋아하는가

▲한국인은 왜 특정한 장소에 ‘방’자를 붙이길 좋아하는 것일까. 주거의 측면에서 보면 온돌 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온돌은 바닥 전체를 난방하기 때문에 침대와 같은 가구를 들이면 열을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없다.

한옥에 가구보다 벽장이 발달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잡다한 가구를 들이지 않다 보니 자연스럽게 방이 넓어지고 다목적으로 방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우리나라의 방은 예로부터 취침, 식사, 손님 접대, 오락, 집안의 대소사 의논 등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수행하는 공간이었다. 목적에 따라 침실, 서재, 거실 등으로 방을 구분한 서구와 출발부터 달랐기 때문에 한국인에게 방이 갖는 의미는 다를 수밖에 없다. 방의 이미지를 상업적으로 많이 활용하는 것도 방에 대한 친숙함에 기인한다.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방!방!방!

방은 기본적으로 밀폐된 공간이다. 밀폐된 공간에서는 도덕 불감증이 생기기 쉽다. 방 문화가 번성하면서 기형적인 방 문화까지 등장하게 된 배경이다. 일부 DVD방은 젊은 연인들의 스킨십 장소가 되었으며 많은 노래방에서 술과 여성 접대부를 제공하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특히 몇년 전 크게 유행했던 속칭 구미식 노래방은 접대부를 고용한 노래방의 폐해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노래방 문화가 발달하면서 기계에 의존하지 않고는 노래 한곡 부르지 못하는 디지털 치매 현상도 낳고 있다.

한국게임 문화의 산실로 꼽히는 PC방은 게임 중독이라는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 얼마 전 게임에 빠져 갓난아기를 굶겨 죽인 젊은 부부의 이야기는 세상을 경악하게 했다.

골프 붐과 함께 등장한 스크린골프방 일부에서는 내기 골프가 성행하고 있으며 술까지 판매하는 곳도 있다. 음란한 대화와 행위가 이뤄지는 성인PC방과 전화방, 인형체험방의 등장도 방 문화를 부정적으로 보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대딸방은 한국의 유사 성행위 업소를 지칭하는 말로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대한 법률(성매매 특별법) 의해 불법이며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

그러나 경찰의 단속에도 불구하고 전국 각지에 음성적으로 영업을 하고 있으며 스포츠 마사지 혹은 남성 휴게실등의 간판을 걸고 영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

보통 조명이 어두운 개인 독방으로 구성되며 스포츠 마사지로 위장하는 경우 스포츠 마사지를 먼저 해준다. 가격은 일반 스포츠 마사지보다 비싸며 이는 지역에 따라 다르다.

마사지가 끝나면 고객 대신 자위행위를 해주며 이때 성적 접촉은 이뤄지지 않는다. 초기에는 대학생이 종사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윤락여성들이 종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키스방은 키스를 판매하는 업소로 지난 2009년부터 대한민국 유흥가·대학가를 중심으로 퍼져 나갔다. 2010년부터 현재까지 전국적인 체인방을 갖춘 업체도 등장했고, 키스방 업체들은 블로그, 홈페이지를 통해 흥보활동을 한다. 이들 업소의 홈페이지에는 여성들의 신체사이드·반라의 사진을 메뉴로 띄어 놓고 있다.

이들 업체는 방문 전 전화 예약을 손님들에게 요구하고 있다. 최초에는 손님과 간단한 대화후 키스 정도만 제공하는 업소로 시작했으나 요즘은 대부분 유사성행위를 제공하는 불법적인 영업을 하는 곳이 많아져 사회적 문제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허그방 성매매 단속이 강화되면서 이에 대한 풍선 효과로 ‘키스방’과 같은 유사성행위업소들이 성행하고 있는 가운데 최근 ‘포옹만 해 준다’는 ‘허그(hug)방’이란 신종 업소까지 등장했다.

이는 포화 상태에 달한 유사성행위업소들이 저렴한 서비스를 내세워 손님을 끌어 보려는 속셈에서 시작한 것으로 경기도 일대에서는 이미 성업 중이며 점차 서울로 확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귀청소방은 일본에서 인기를 끌었던 서비스 업종으로 지난 4월부터 국내에 상륙한 것으로 알려졌다.

밀폐된 공간에서 선정적인 의상이나 코스프레를 착용한 여성이손님이 소파 위 여성의 무릎에 머리를 대고 누우면 가벼운 대화를 주고받은 뒤 귀지를 대신 파주고 고객이 선택한 서비스에 따라 귀 청소 외에도 귀 마사지, 귀 테라피까지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좁은 방안에서 고객과 1대1로 이뤄지고 있어 퇴폐영업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최석호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사회학 전공)는 한국인들이 공적인 공간(도심)에서 사적인 공간(방)을 찾는 이유를 “서양인들에게 집은 사적·개인적 공간이지만 한국인에게 집은 사적·개인적 공간으로 보기 힘든 측면이 있다”는 데서 찾는다.

최 교수에 따르면 한국의 경우 좁은 국토와 높은 인구밀도로 인해 방과 방 사이의 거리가 짧고 공간 자체도 좁기 때문에 내 집이나 내 방에 있다고 해서 나만의 공간이라고 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

위계도 엄해 자녀는 부모 방에 함부로 들어갈 수 없지만 부모는 자녀 방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어 아랫사람에게 집은 사적·개인적 공간일 수 없다. 가족간 유대가 강해 한집에 사는 사람이 많은 것도 개인이 사적 공간을 갖지 못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결국 집에서 침해당한 개인적 공간을 밖에서 찾으려 하는 경향이 방 문화 선호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정서적 측면에서는 공동체 문화에 익숙한 한국인들이 혼자 노는 것보다 어울리는 것을 더 좋아해 여럿이 함께 놀 수 있는 방을 많이 찾는 것으로 해석된다.

사회적 측면에서 살펴보면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수단으로 방이 많이 활용되고 있다. 좁은 공간에서 함께 유희를 즐기다 보면 공감대가 쉽게 형성돼 평소 멀게 느껴졌던 사람도 친밀하게 다가올것이다.

이밖에 치열한 경쟁에 내몰린 현대인들이 과도한 스트레스를 피해 개인적 공간을 찾는 것도 방 문화 발달의 한 측면이라는 사회적 분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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