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4 (수)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의정칼럼]고순희"시민이 더 무서워지는 시대"

 

시민과 소통하기 위해 거리로 나가는 일은 의원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지만, 솔직히 부담될 때가 많다. 살기 팍팍해졌다고 한숨을 내쉬거나 울상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는 분들이 많아진, 손님으로 붐벼야 할 가게들이 파리를 날리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는 요즘에는 시민의 대표 일꾼으로써 간혹 부족함을 느끼며 미안할 때가 있다. 하지만 얼마 전, 정말 도망치고 싶은 시민을 한 명 만나고 말았다. 장장 20분이 넘는 시간 동안 길거리에서 논리정연하게 주장을 펼치는 그 시민에게 아무 소리도 못하고 죄를 지은 기분으로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간신히 도망치지 않았지만, 누가 나 좀 도와줬으면 하는 생각을 간절하게 했다.

서른이 넘었다는 그 시민은 날 보자 “고순희 의원님 되시죠?”라고 말을 건넸다. 인사를 드렸더니 이 분이 내게 내년 광명시에서는 공무원 채용을 어떻게 할 생각이고, 시 재정은 어떻게 운용할 건지 이야기해 줄 수 있냐는 질문을 했다. 왜 그러시냐고 물어봤더니 자신이 백수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이라 궁금해서 물어봤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서 우리 시 재정은 다른 시에 비해 튼튼하니 걱정을 하지 않으셔도 되고, 공무원 채용은 아직 잘 모르겠다고 답변했다. 그런데 내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건지, 내 말이 끝나자 그 시민은 픽 웃더니 갑자기 그리스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스가 구제금융을 받느냐 마느냐로 나라가 쑥대밭이 된 건 알고 있냐, 그리스의 경제 위기에 대해 얼마나 아냐, 그 원인이 뭔지는 알고 있냐…….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고 어깨 위를 누가 쾅 하고 찍어 누르는 느낌이 들어 아무 말도 못 했다.

결국 사실대로, 죄송하지만 그리스에 대해서 잘 모른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그 시민은 씁쓸하게 웃더니 찬찬히 설명해 주었다. 그리스 경제위기의 원인은 크게 세 개로 나눌 수 있다고. 하나는 수출보다 수입이 더 많아 무역 불균형이 심각한 나라라는 점, 다른 하나는 정부와 정치인이 부패해서 세금을 낭비했다는 점, 마지막 하나는 세금도 제대로 못 거두는 엉망인 행정을 해 왔다는 점. 결국 타락한 정치가와 공직자들이 그리스를 말아먹은 꼴이라고 하는 그 시민의 말에 제대로 된 대답도 못 하고 귀담아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 시민은 제대로 된 정치가 밑에서 일하고 싶으니, 그리스처럼 되지 않게 시 재정 감시를 잘 하시라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요즘 젊은이들 건방지고 자기밖에 모르고 예의도 없다는 이야기가 많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할 수 없었다. 오히려 그 시민, 젊은 청년은 자신의 힘든 처지에도 바른 말로 나를 깨우쳐 줬다는 생각에 ‘정말 시민이 무섭다’는 생각까지 했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에 활동을 마치고 돌아와 자료를 찾아 본 나는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 시민이 정말 제대로 알고, 제대로 된 이야기를 내게 해 줬기 때문이었다. 이 지면을 빌려 그 젊은 시민께 감사를 드리며, 또 더욱 더 의정활동을 열심히 하겠다고 약속드린다.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