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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칼럼]반백의 중국인, 아버지 찾아 파주적군묘에 오다

 

2년 전 일이다. 대학동창이 파주 적군묘를 찾는다며 시의원이니 알지 않냐고 물어왔다. 아니, 뭐 파주에 적군묘? 금시초문의 이야기였다. 얼마지나지 않아 친구는 나이지긋한 중국인 아주머니를 모시고 파주에 왔다. 친구는 잠실 인근 고등학교 국어교사이다. 어느 모임에서 한국을 배우러온 중국인 유학생을 알게 됐는데, 그 여학생의 친구 어머니가 아버지 산소를 찾는다는 사연을 얘기했단다. 그 후 우연히(2010년 6월경) 중앙일보에 적군묘에 대한 기사가 실렸고, 이를 그 중국인 유학생한테 알려줬고, 유학생은 중국에 있는 친구에게 알려 그 아주머니가 추석 무렵 한국을 찾은 것이다. 당시 적성고 한대희 교장선생님께서 길 안내해 줬다.

그 아주머니는 유복자라 했다. 당신이 어머니 배속에 있을 때 아버지가 한국전쟁에 참전했고, 그리고 전사했다고. 당신이 죽기전에 아버지 묘소에 와보고 싶다고 물어물어 파주 적성면 답곡리를 찾아온 것이다. 슈퍼에 들러 제수를 사고 어느 무명인이란 팻말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이 적군묘는 적군이라도 전사한 군인의 묘지를 조성하고 이를 존중해야 한다는 제네바 협정에 따라 1996년에 조성한 것이다. 한국전쟁 이후 전국에 산재한 북한군 유해 727구와 중국군 유해 329구를 모아 안장하고 있었다. 소위 권오신, 소위 김수운 같은 묘비명도 있지만 대다수가 ‘무명인’이다. 그 옆에 유해가 발굴된 장소인 ‘강원 인제 남면’, ‘강원 홍천 화촌면’이란 지명이 쓰여있다. 그 아주머니는 못내 아쉬운 듯 “적군 묘가 더 있나?” “관리는 어떻게 하나?”를 물어왔고, 우리는 그것을 물어보려고 25사단을 찾아 돌아다녔다. 서너군데 군부대에 들러 물었다. 군 입구에서는 상부로 전화를 해보더니 “모른다”는 답을 했다.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의 묘를 찾아 이역만리를 날아온 이에게는 한참이나 안타까운 일이었다.

친구는 적군묘에 다대포 침투 간첩의 묘가 있더라며 이렇게 말했다. “한국사회가 대단히 성숙했구나” “우리가 관용을 베풀 수 있구나” 지난 5월 26일 이 적군묘에서 천도제 108일 회향식을 했다. 금강사 묵개선생이 주관해 그간 적군묘의 영령들을 위해 천도제를 지내왔던 것이다. 그곳에서 권철현 전 주일대사가 말했다. “예전에 적이었던 중국 정상과 우리가 와인잔을 부딪히는 이 마당에 이 적군묘가 상호존중, 평화의 상징이 되어야 하지 않겠나”고. 적군묘 회향식을 하며 여러 감회가 들었다. 여기 묻힌 그 아주머니의 아버지란 분도 불타는 적개심 때문이거나 목숨을 버릴 만큼 투철한 사명감 때문에 참전한 것은 아니었으리. 나라의 백성이라는 이유로 국가의 명령을 따라 방아쇠를 당겼던 것. 그리고 죽어 이 땅에서 원혼으로 말하고 있다. “어머니, 배 고파요” “어머니, 보고싶어요” 이 말은 천도제를 지내게 된 이유를 묻는 내게 묵개선생은 “원혼은 이 두 가지만 말해. 이념이고 국가고 적이고 그런거 없어”라며 한 말이다.

적군의 유해를 정성스레 모신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부모를 찾아 이름도 없는 산소를 어루만지는 반백의 중국인 아주머니를 보면 썩어가는 나무 묘비명이며 주저앉은 봉분이 부끄러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전쟁으로 우리의 상처가 컸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더 큰 마음으로 평화를 껴안아 버린다면 중국인들도 우리에게 진정으로 감사한 마음을 낼 것이고, 그것이 한반도 평화의 튼실한 거름이 될 거라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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