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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n쉼]곽재용"화성연쇄살인사건"

 

<살인의 추억>을 만든 봉준호 감독은 내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준비하는 동안 그놈을 미치도록 잡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좌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도 박병두의 장편소설 ‘그림자밟기’란 영화의 시나리오와 씨름을 하면서 어느 순간부터 화성연쇄살인사건에 몰두를 하기 시작했고, 과거에 봉 감독이 그랬듯이 범인을 잡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혔다.

사건이 일어났던 당시에 난 신혼생활을 막 시작할 때였고, 비오는 날 빨간 옷을 입은 여자들을 강간 살인한다는 소문이 퍼져서 아내에게 주의를 준 기억도 있다. 잊혀질만하면 신문과 TV에 동일한 수법의 범죄가 이어졌다. 어느 때 부터는 범인이 수원사람이라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고, 마침내 수원의 화서역 주변에서도 대학 입학을 앞둔 여학생이 참변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에 난 재수 없으면 용의자로 몰릴지도 모른다는 ‘알프레드 히치콕’식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주인공들은 죄 없는 자들로 억울하게 용의자가 돼 경찰에 수배된다-공포감을 품고 다니기도 했었다. 모든 수원시민들이 그러했으리라. 80년대 중후반만 해도 자가용이 많지 않았던 시절이었기에 화성지역은 수원에서 그리 가깝게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교통의 발달로 수원에서 채 30분도 걸리지 않는 곳에 9차에 걸친 살인 사건 현장이 모두 분포돼 있다. 대부분의 살인사건이 일어났던 지역은 수원사람이라면 한 번 쯤은 다녀봤을 만한 길목에 있다. 수원 사람치고 용주사나 융건릉(정조와 사도세자의 능) 또는 세마대에 다녀오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경찰은 공소시효가 지난 지금까지도 화성살인사건을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해 보인다. 수사에 참여했던 많은 사람들이 좌절을 겪었을 것이다. 때문에 범인이 죽었다고 추측하기도 하고, 당시에 사회 혼란을 조장시키려는 불순분자의 행동으로 분석하는 사람도 있고, 대공수사요원이 개입됐을 거란 사람도 있다. 풀려난 화서역 사건의 용의자가 범인일 거라고 추측하는 사람도 있다. 한 번은 어느 사형수가 스스로 화성살인사건의 범인이라고 주장을 했지만 거짓으로 판명이 난 적도 있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공소시효가 지나서 처벌할 수 없으니 자수를 하라는 주장도 한다. 영화 속엔 경찰들이 시위를 막으러 출동해서 살인을 막지 못하는 장면도 있지만, 실제론 경찰이 이 사건을 그렇게 소홀히 다룰 수 없는 상황이었다. 수사책임자가 수없이 바꿨고 조속한 해결을 하라는 엄청난 국민적 압력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조수사에 구멍이 있었던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 것 같다.

화성살인사건은 한국의 과학수사를 앞당겼다고 한다. 더 이상 과거의 방식으로는 범인을 추적할 수 없었다. 당시엔 타액이나 정액, 모발 등에서 고작 혈액형을 알아내는 정도여서 도입되지 않았던 DNA 유전자분석을 위해 법의관이 일본에 증거물을 직접 들고 가서 의뢰를 했었다고 한다. 지금도 다른 사건의 용의자들이 잡히면 당시 범인의 DNA로 화성살인사건과의 연관성을 찾는다고 한다.

화성살인사건을 되짚어 볼수록 같은 인간으로서 분노를 참을 수 없다. 어찌 인간으로 그럴 수 있을까.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죄없는 여성들을 무참히, 그것도 잔인하게 괴롭히는 방식으로 살해할 수 있는가.

공소시효란 것이 있어서 어느 정도의 세월이 지나면 범죄가 기소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것이 흉악범에게도 적용된다는 것이 의아스럽다. 나는 묻고 싶다. 당시에 살해당했던 여인들과 가족들의 가슴 속 상처에도 공소시효가 있는가? 이 사건이 이대로 미제사건으로 남는다면 수백 년 지나서도 많은 사람들을 가슴 아프게 하고 분노하게 할 것이다. 자, 이제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이라면 더욱 좁혀서 수원에 살았던 사람들만이라도 지난날 배포됐던 범인의 몽따쥬를 다시 한 번 살펴보자. 그리고 당시에 내 아들이, 내 형제가, 내 친척이 혹은 내 친구가 사건들이 일어나던 밤에 사라진 적이 있었다면 몽따쥬를 다시 한 번 바라보길 바란다. 끝내 좌절할지 모르지만 나도 영화를 통해 놈의 그림자를 밟아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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