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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한의세상만사]初食不吉(초식불길)

 

참 좋은 계절이다. 태풍피해 소식이 마음을 무겁게 하지만, 언제 심술을 부렸는지 싹 둔갑을 하고, 하늘은 파랗고 가을바람마저 솔솔 불어오니... 어쩌면 일년 가운데 가장 붙잡고 가두어 놓고 싶은 계절이 이맘 때인지 모른다.

사람마다 계절에 따르는 스산함이 있다. 세월을 돌려 놓고 보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어릴 때 연정(戀情)을 품었던 단발소녀가, 불현 듯 훈련소 친구가 생각날 수도 있다. 모두 인연(因緣)의 소중함이리!

얼마 전 “우리 둘 사이는 친구다” “아니다, 그리 가까운 사이가 아니다” 똑똑한 변호사님들의 보잘 것 없는 수준의 공박(功駁)이 화제가 됐다. 두 사람 모두 서울법대를 나와 앞서거니 뒷서거니 검사생활을 시작했고, 비슷한 시기에 정계에 관심을 둔다. 어쩌면 본격적으로 입문(入門)했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은 듯하다. 서로 모시는 주군(主君)(?)이 양보할 수 없는 한자리를 놓고 다툼하느라 이해가 다른 것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박희태(朴熙太)와 박상천(朴相天)이라고 있다. 한사람은 경상남도, 또 한사람은 전북 출신이 소위 영호남이다. 둘 다 서울법대를 나와 검사생활로 사회에 첫발을, 그리고 둘 다 같은 시기에 국회의원에 당선된다. 그들의 보스는 김영삼과 김대중. 널리 알려진 대로 치열한 경쟁을 하는 가운데 각각 핵심참모로 승승장구한다.

둘 다 명 대변인(代辨人)으로 아직까지 회자된다. 박희태 씨가 “자기가 하면 로멘스, 남이 하면 불륜이냐?” 메섭게 몰아 부치면 박상천 씨는 “그 친구 논평하나는 참말로 멋들어지게 하네”하면서 허허 웃음으로 넘겼다. 그 뒤 각당의 원내총무, 시차는 있지만 법무부장관 그리고 국회의장, 한 사람은 부의장을 지냈다.

인생의 큰 그림에서 이처럼 동도(同道)를 함께 한다는것이 어디 쉬운 일일까? 서로가 약점과 강점을 훤히 뚫고 있다 보면 지켜야할 선(線)을 넘기 더욱 쉬운 법이다. 어떤 연유로 분쟁이 나면 부부간, 형제간이 남보다 훨씬 못한 법이다. 유행가 가사처럼 뒤늦게 아차!하고 후회 해본들... 이미 깨진 쪽박을 붙여 보았자 보기에 더욱 흉하다.

두 사람의 우정 때문에 각자의 보스들로부터 무척 오해를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첨예하게 대립되는 사안을 자기당 소속 국회의원들을 설득할 때 친구이기 때문에...... 항상 친구 사이란 걸 앞세웠단다. 박상천 씨 왈 “우리는 경쟁적 맞수가 아니고 보완적 맞수”라고 했다. 참으로 멋들어진 정치인들이다. 물론 지금이나 그때나 그쪽 동리가 꾸정물 투성인 것은 사실이고, 아직까지 별반 달라진 것도 없지만....

이런 낭만가객(浪漫佳客)이 사라졌으니 더욱 황량해 보인다. 물고 뜯고.... 표현이 뭣하지만 두 변호사님들의 행태가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는걸 어떡하나! 어찌됐던 “친구다” “아니다” 손가락질 하는건, 이건 배운 사람들의 자세는 아니다. 벌써 조바심을 낼 나이도 아닌데...

‘인생 삼대 악재(惡材)’라는 말이 있다. 그 중에 초년출세가 가장 으뜸이라는 노름판 ‘초식불길(初食不吉)’이란 말도 참고하시기를.... 50대 중반에 정점(頂點)에 서고, 60대에는 관록으로 자신을 회고(懷古)하고, 그 후에는 서서히 잊혀져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했다.

덧붙이자면, 왠만해서 틀린말 한 적이 없는 공자께서 “친구란 서로 마음에 상처주는 말을 절대 삼가야 하며, 친구를 이용해서 이익을 얻는 것은 매우 죄질이 나쁘다”고 했다. 참으로 부끄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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