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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n쉼]곽재용"다시 태어난다면"

 

인생을 리셋할 수 있는 버튼이 있다면…당신은 쉽게 누를 수 있을까요?

부부끼리는 가끔 이런 질문을 한다. ‘다시 태어난다면 나와 다시 만날 거야?’ 언젠가는 후배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다시 태어난다면 우리나라에 태어나고 싶니?’ 후배는 대답을 못하고 한참을 망설였다. 나는 혼자서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다시 태어난다면...

‘다시 태어난다면’이란 ‘지금까지 인생을 리셋하고 새로운 인생을 산다면’이란 뜻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본의 만화 작가인 미노루 후루야는 <이나중 탁구부>에서 중학생 아이들끼리 그런 질문을 한다. 지금까지 인생을 리셋할 수 있는 버튼이 있다면 서슴지 않고 누를 것이냐고. 리셋버튼을 쉽게 누를 수 있을 것 같지만 아이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리셋버튼을 누르는데 주저한다.

과연 우리는 어떨까?

누구나 다시 태어난다면 더 좋은 가정에서 태어나고 싶을 것이다. 대한민국 보다 복지가 더 잘 돼 있는 국가에 부유하고 온후한 가정에서 태어나 사랑을 독차지하고, 엄격하지만 수준 높은 교육을 받으며 살고, 부모에게 물려받은 머리도 좋아서 그리 큰 노력을 하지 않아도 성적이 상위권이라 우수한 대학에 들어가 원하는 학문을 배우며,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해 누가 봐도 부러워하는 전문직에 종사하다가, 누가 봐도 아름답고 집안도 좋은 여자와 3년 정도의 뜨거운 연애를 하다 두 집안의 축복 속에 결혼해 사랑스런 아이를 낳고,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그동안 물려받은 재산으로 인해 보장받은 노후를 즐기며 사는 것. 이것은 리셋한 인생의 최상의 시나리오일 것이다.

정반대의 상상도 해볼 수 있다. 우리나라보다 열악한 국가에서 사회복지제도는 찾아볼 수 없는 상황에 놓여진 어린아이들 중 하나로 태어난다는 가정도 해보는 거다. 국가는 내전에 휩싸여 있고, 정부는 무능하고 부패해 있는 저 멀리 있는 한 나라에서 중노동을 해야 하루하루를 사는 마을의 어린이로 살아가 보는 거다.

거기서 밝은 미래를 보장 받는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보다 힘들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사는 인류는 분명 존재하고 그 속에서 사는 사람도 인생을 운명으로 받아드리던지 또는 운명을 거스르려고 노력할 것이다.

또 다른 상상이 있다. ‘만약 과거의 나와 똑같은 삶이 다시 시작된다면’이란 상상이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돼 있을 확률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지금의 내가 형성되는데 많은 우연적인 사건과 순간의 판단 등도 작용했고, 아슬아슬한 위험에서 순간적인 빗겨나감 때문에 목숨이 부지된 경우도 엄청 많았기 때문이다.

나도 지금까지 사는 동안 정말 아슬아슬하게 죽음을 빗겨갔던 순간이 몇 번 있었다. 그런 순간이 똑같이 반복된다는 상상은 다시 하고 싶지도 않은 경우도 많다.

어느 누구도 인생을 살면서 사고 한 번 나지 않거나 크게 앓아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점쟁이가 ‘당신 옛날에 크게 앓은 적이 있지?’ 또는 ‘옛날에 큰 사고가 난 적이 있어’하고 말하면 누구나 자신이 겪은 사고나 질병을 생각할 것이다.

만약 우리가 시대를 좀 더 앞당겨 태어났다면 우리 부모세대가 살아야 했던 식민지 시대와 전쟁 등 아픈 역사 속에서 아직까지 살아남아 있었을까.

우리가 인간으로 태어난다는 보장도 없었을 것이다. 혹시 애완견이나 가축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주인의 사랑을 듬뿍 받는 애완견이 된다면 그나마 좋겠지만 육류를 제공하기 위해 짧은 일생을 좁은 우리에서 보내다 가야하는 돼지나 닭의 삶을 생각하면 사람으로 태어난 것에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

몇 년 전 홋카이도의 키타미란 곳에 갔을 때, 내일 도살되기를 기다리는 소들을 보고 관계자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혹시 탈출해서 자유를 찾은 소는 없나요?” 아우슈비츠에서도 탈출한 인간은 있지만 도살장에서 탈출한 소는 없다고 한다.

나는 가끔 내가 기르는 개를 보며 ‘생각은 인간처럼 할 수 있지만 몸의 구조가 개라면 과연 나는 어떻게 표현하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상상을 한다. 결론은 아무리 똑똑해도 멍멍 짖고, 꼬리를 흔들고 하는 것 이외엔 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쯤에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우리는 쉽사리 인생의 리셋버튼을 누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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