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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시론]조성범"학생은 사람이 아니므니다"

 

요즘 한 방송사의 개그프로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갸루상. 언제나 예상을 벗어난 반전에 시청자들은 모처럼 대박웃음을 맛본다. 이 웃음의 코드는 풍자, 그 풍자의 대상은 자아정체성의 혼란이다. 사람이되 사람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우리 사회 비주류, 혹은 루저들의 속마음을 ‘사람이 아니므니다’라고 압축시킨다. 갸루상의 대사가 주는 웃음 이면에 우리 사회의 슬픈 자화상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장애인, 이주노동자,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 학생 등 사회적 약자는 아직 우리 사회에서 사람이 아니다.

학교폭력 가해 사실의 학교생활기록부 기재 여부를 둘러싼 논쟁은 우리 사회의 폭력적 인식을 날 것 그대로 보여줬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 배제, 격리 위주의 정책에 화룡점정을 찍는 것이 학생부 기재 방침이었다. 학교폭력을 예방하기 위한 대책이라고 하지만, 교육적 접근은 처음부터 불가능했다. 피해자를 배려하기 위해 불가피하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없다. 가해자를 엄벌한다고 피해자의 상처가 치유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피해자나 가해자 모두에게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 대책이다.

학생의 자치· 참여가 학교폭력의 해법

우리 사회는 강력사건이 발생하면 미디어가 앞장서 피해자의 감정을 대중에게 이입한다. 대중은 분노하고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이런 분위기를 틈타 정부는 모든 책임을 가해자 개인에게 돌린다. 정책적 오류는 자연스럽게 묻히고, 문제의 근본적 원인을 성찰할 기회를 잃게 된다. 이는 집단지성이 발붙일 곳을 원천적으로 봉쇄한다. 근원을 살피려는 합리적, 집단적 성찰이 전제돼야 올바른 해법도 나오는 법이다. 성찰은 우리를 겸허하게 한다. 이런 바탕에서 교육적 접근이 가능하다. 피해자에 대한 치유와 보호조치는 당연히 선행돼야 한다. 또한 가해자에 대한 집단적 심리치료를 병행해야 한다.

모든 폭력은 관계의 뒤틀림에서 비롯한다. 따라서 학교공동체 안에서 구성원 간의 관계 회복이 폭력 예방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 관계 회복은 폭력에 대한 감수성을 통해 가능하다. 폭력에 대한 감수성을 키워주기 위해서는 어릴 때부터 체계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유치원부터 교육과정 속에 폭력감수성 내용을 녹여내야 한다. 감수성 교육은 어릴 때 시작할수록 효과가 배가된다. 교육선진국이라고 하는 핀란드나 노르웨이의 조기 폭력예방 교육은 그런 면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핀란드는 초등학교부터 자아를 탐색하고 사회성을 함양하는 교육에 치중한다. 이 두 나라의 공통점은 정부와 학교, 미디어 등 사회의 모든 부문이 한마음으로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느 사회는 폭력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따라서 폭력을 줄이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 어릴 때부터 인간의 존엄성을 일깨워주는 교육을 하자. 그러기 위해서는 나이 어린 학생이라도 할지라도, 그들을 당당한 인격체로 인정해야 한다. 학생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은 학생들 사이에서 해법이 나올 수 있다는 믿음이 전제돼야 한다.

그런 점에서 학생의 자치와 참여가 학교폭력의 해법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학생들 스스로 문제를 발견하고 해법을 모색하도록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학교생활을 규정하는 모든 규칙을 만드는 과정에서부터 스스로 참여해 자신들의 의견이 반영되는 성취를 맛보는 것은 민주시민의 자질 함양을 위해 소중한 체험이 된다.

이미 경기도교육청은 학교폭력 예방 대책의 하나로 ‘또래중조프로그램’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또래중조(Peer Mediation)란 왕따·싸움·괴롭힘 등 주위 학생들 간 문제가 있을 때 중조인이 나서 당사자들 사이에서 대화로 잘 풀 수 있도록 돕는 활동을 말한다. 자치법정이 자칫 징계 양정을 논하는 방향으로 갈 위험성이 있는데 비해 또래중조는 훨씬 교육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는 미국에서 시작해 효과를 보았고, 노르웨이에서도 시행하고 있는 제도이다. 학교폭력을 막자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다. 다만 학생을 대상으로 한 모든 정책은 교육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교육정책에 교육이 없다’는 비판을 새겨야 한다. 학교는 아직 교육기관이기를 포기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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