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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칼럼]박남숙"倒履相迎<도리상영>"

 

도리상영(倒履相迎)이란 말이 있다. 가까운 벗이나 반가운 손님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기쁜 나머지 신마저 거꾸로 신고 나가 마중한다는 뜻으로 손님을 반갑게 맞이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이 말은 삼국지 위서 왕찬전에 언급되고 있는데, 동한(東漢) 헌제(獻題)때 채옹이라는 사람과 관련된 고사성어이다.

그는 왕의 총애를 받아 좌중랑장(左中郞將)이라는 높은 직위에 있었는데 평소 학식과 고상한 인품 때문에 그의 집안에는 늘 손님들이 많았으며 대문 앞에는 오고가는 수레들로 정체가 될 지경이었다고 한다. 그는 자기를 찾는 사람에 대해 출신을 묻지 않았고 누구와도 교류를 하는데 차별을 두지 않았다고 한다. 한번은 주요 인사들과 긴요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대문 앞에 왕찬이라는 사람이 와 있다는 전갈을 받고 채옹은 즉시 집안에 있던 손님들을 물리치고 달려 나가 그를 맞아 들였는데, 어찌나 급히 달려 나갔던지 신발을 거꾸로 신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천하의 채옹이 신발을 거꾸로 신고 달려 나갈 정도라면 왕이나 왕족일거라고 생각하며 과연 누군지에 관심이 쏠렸는데 잠시 후 채옹은 왕찬을 객청으로 안내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 대단한 손님의 모습을 보고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알고 보니 왕찬은 어린아이였기 때문이었다.

채옹은 사람들이 놀라는 모습을 보고 말하기를 “이 분은 왕찬이라는 사람인데, 저는 이분보다 못합니다. 저희 집의 모든 책과 글은 마땅히 이분에게 드려야 합니다”라면서 왕찬에 대한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줬다. 하루는 왕찬이 친구들과 함께 길을 가다가 비석하나를 발견했는데, 비석 위에는 많은 글자들이 새겨져 있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심코 지나쳐 버렸으나 시간이 지난 후에도 왕찬은 눈으로 비석을 한번 훑어본 것에 불과했지만 한글자도 틀리지 않고 다 외우던 신동이라는 말을 듣고 장차 자신을 능가할 인재로 눈여겨보던 차에 자신을 방문했으니 내 어찌 앉아서 맞이할 수 있겠느냐고 소개하더라는 것이다.

대개의 사람들은 자기보다 높은 사람들을 선대하고 아랫사람들을 하대한다. 그것이 질서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아무리 비상한 재주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아직 어린아이에 불과한데 신발을 거꾸로 신고 달려 나가 영접하는 것이 말 같이 쉬운 일이 아니다.

점점 인간사는 세상이 각박해지고 경쟁이 치열해 사람사이의 정이 메말라 간다. 어린 시절 눈만 뜨면 붙어 다니던 친구들 지금은 모두 저마다 자기 생업에 바빠 일 년에 한 번 만나기도 어렵다. 그리고 당장 눈앞의 이익을 좇아야 하는 세상 속에서 인간관계를 만들다 보니 더욱 삭막한 생각이 든다. 이 사람을 상대하면 나에게 유익이 있을 것인가, 손해가 될 것인가를 따져야하니 여간 복잡한 게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보다 높은 사람근처에 있기를 원한다. 나는 요즘 새카만 후배와 노닥거리고 산다. 그 후배가 왕찬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후배가 온다는 전갈이 오면 도리상영하고 달려 나간다. 마음이 편하다. 가난한 사람들이기에 때로는 자장면이나 칼국수를 먹는게 기껏이지만 그래도 즐겁기만 하다. 그 후배는 나에게 요구하는게 없다. 표를 달라고 보채지도 않고 자기를 알아달라고 하지도 않는다.

거기엔 격식도 필요없고, 잔머리 굴릴 일도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나를 이용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에 피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 그리고 만나고 싶은 사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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