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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향]"김훈동"노년기, 시야 넓어지는 인생의 가장 높은 봉우리

 

얼마 전, 45세 부장판사가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한 66세 할머니에게 ‘늙으면 죽어야 한다’는 막말을 해 물의를 빚었다. 할머니는 사기 및 사문서 위조사건 피해자다. 사기 피해를 입은 것도 억울한데 판사한테 모욕까지 당한 셈이다. 60세 이후엔 의심 기능을 관장하는 뇌의 특정 부위가 쇠퇴하기 시작한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노인들은 노골적인 속임수와 사기에 속절없이 넘어간다. 무심코 실언했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우리 사회는 매우 빠른 속도로 고령화되고 있다. 노년기가 청년들에게는 멀게만 느껴지는 일이고 중년들에겐 두렵기만 한 일인지도 모른다. 모든 꽃이 시들고, 청춘이 나이에 굴복하듯이 삶의 모든 과정과 지혜와 미덕도 제때 피었다 지는 꽃처럼 영원하지 않다. 누구도 거역할 수 없다. 노년기가 삶을 마감하기 전 거치는 단계가 아니다. 인생을 아름답게 마무리할 새로운 기회다. 하나의 발달단계로 자아를 찾아 변화와 발전을 이뤄내는 시기다. 인생을 재발견하는 때다. 소설에 비유하면 마지막 장이 된다. 이제껏 살아온 모든 것이 응축되어 녹아나고 많은 이야기와 갈등이 마무리되는 시기다.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생각하는 것이 덧없고 부질없는 일로 치부될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나 노년을 맞이하는 것은 아니다. 장수하여 노년에 이르렀다는 것은 분명 축복이다. 누구도 ‘나이 드는 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등산하는 것과 같다. 오르면 오를수록 숨은 차지만 시야는 넓어진다. 나이테가 많은 나무가 좋은 나무다. 생각만 살아 있다면 노년기에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피터 드러커는 ‘나의 전성기는 60세부터 90세까지 30년이었다’고 말했다.

지난 금요일, 나는 화성시 노인대학에서 ‘노년의 즐거움’이란 주제로 강의를 했다. ‘노년은 인생의 가장 높은 봉우리입니다. 아무나 오르지 못합니다. 노년이 아니고는 누구도 신선을 꿈꿀 수 없습니다. 신선이 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도 어르신들은 속세의 신선이 될 수 있습니다. 인생의 전반부가 이래라 저래라 강요받는 것이었다면 후반부는 선택하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를 잘 사는 것이 멋지게 나이 드는 것입니다. 어르신이 ‘걸, 걸, 걸’ 하고 웃을 때, 그 ‘걸’은 뜻이 있습니다. 내가 좀 ‘참을 걸’, 내가 좀 ‘베풀 걸’, 나도 좀 ‘즐길 걸’ 하고 후회하는 소리입니다. 공자도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고 했습니다. 어르신은 ‘누구의 눈치도 보지 말고 당당하십시오. 또 요구하십시오’라고 강조하며 건강하게 오래 살기 위한 조건을 제시했다. 넘어지지 말 것. 다리와 무릎 다쳐 다리근육 사용횟수가 줄면 급속히 쇠약해지기 때문이다. 감기 걸리지 말 것. 폐렴은 위험하고 감기바이러스는 약이 없기에 그렇다. 마음 아프지 말 것. 물론 상대의 마음도 아프게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서 세상에는 자신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두 종류가 있다. 할 수 있다는 강한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 게 강의 요점이었다.

이날 강의 중에 한 여성 어르신 한 분이 단상 위로 올라와 강의 탁자에 1천 원짜리 지폐 여러 장을 올려놓고 ‘강의가 내 맘에 꼭 들어서 드린다’라며 내려가신다. 갑작스런 일이라 ‘강의 중에 이렇게 돈을 받기는 처음입니다. 고맙게 받겠습니다’하며 강의를 이어갔다. 물론 박수가 터져 나왔다. 강의가 끝난 후에야 천 원짜리가 10장임을 알았다. 감동이 있고 즐거움을 아는 어르신들이다. 아름답고 찬란한 ‘노년문화’를 알고 있다. 난 강단에서 내려와 돈을 주신 어르신과 포옹을 하며 감사인사를 나눴다.

마키아벨리는 ‘운명은 삶의 절반만 관여하고 나머지 절반은 삶의 주인에게 맡겨져 있다’고 말했다. 내 인생 내가 만들어 가는 것이다. 나이가 들었기 때문에 죽어야할 이유는 없다. 드는 나이를 나무랄 것도 없다. ‘아, 배불러’ 그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화(禍)를 부르는 것도 복을 부르는 것도 스스로 하는 것이다. 인생은 될 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생각대로 되는 것이다. 노년의 남은 인생의 속도는 빠르다. 흘러가는 여생의 시간에는 그 시간만이 갖는 즐거움이 있다. 그 즐거움을 건강이 허락하는 한 마음껏 즐겨야 한다. 지금보다 젊은 때는 다시 찾아오지 않는다. 인생은 언제나 지금이 가장 젊은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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