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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n쉼]이경선"홈쇼핑 마니아"

 

발에 깁스를 하고 집에만 있을 때 우리집 초인종은 매일 울려댔다 경품에 당첨돼 세탁기도 받았으니… 가족들도 못말리는 나의 홈쇼핑 사랑

세상이 참 편해졌다. 굳이 장바구니를 들지 않아도 집안에서 물건을 구입한다. 더 좋은 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반품이 가능하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물건을 직접 보고 가격을 깎아야 하는데 그런 수고는 미리 다 알아서 척척 해결까지 해준다. 깎아 달라는 말을 모기소리 만하게 하는 내겐 적격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생활에 홈쇼핑이 들어온 지 10여 년 정도 되는 것 같다. 우리 집을 봐도 홈쇼핑에서 구입한 것이 여럿 된다. 지난번 장어를 주문하여 저녁 별미로 내놓았는데 가족들의 아낌없는 찬사를 들었고, 이번에는 중화요리 세트를 주문했다. 튀기는 부분이 손가긴 했어도 깐풍기와 누룽지탕에 탕수육까지 근사한 만찬이 되었다. 쇼 호스트가 말 한대로 내가 구입한 돈으로 중화요리 식당에서 시켜 먹을 수 없는 가격이었고 대만족이었다.

홈쇼핑 초기 무렵이다. 가방을 구입하면 증정품이 있다고 했는데 내가 갖고 싶었던 명품백이 함께 따라왔다. 창고직원의 실수였고, 순간 갈등이 생겼다. 몇 십만 원은 족히 줘야하는 가방이어서 탐도 났지만 양심에 걸려 전화했더니 놀라는 음성이었다. 특급택배가 회수해 갔는데 어찌나 배가 쓰린지 굴러온 복을 찬 것 같아 잠까지 설쳤다. 하지만 배상을 해야 할 창고 담당자를 떠올리자 사심은 금세 잠재워졌다.

그런데 세상은 멋지다. 얼마 후, 홈쇼핑에서 주는 경품추첨에 드럼세탁기가 당첨되었다. 100만 원을 호가하는 상품이었고, 지금껏 고장 없이 10년째 사용하고 있다. 사실 자막 아래에 뜨는 경품안내를 광고효과로만 보았는데 그 후 세탁기를 사용할 때마다 홈쇼핑에 믿음이 보태졌다.

발을 깁스하고 집안에 있을 때는 거의 매일 택배물건이 초인종을 눌러댔다. 골절에 효험이 있다는 사골국까지 다이얼을 누르게 했고, 가족들은 나의 사재기 행동에 감히 간섭하지 못했다. 외출도 못하는 처지에 깊은 병이 도질까 우려해 택배가 오면 울상인 얼굴을 감춘 채 내게 들이밀었다. 어제 구매한 물건이 마땅치 않으면 오늘은 반품을 가지러 온 택배기사와 새로운 물건을 배달 온 직원들로 강아지 두 마리는 짖어댔다.

하지만 꼭 필요한 물품만을 사려고 저울질하곤 했다. 혹 가족이 없을 때, 목발을 짚고 물건을 받는 내 모습은 닫힌 일상에서 즐거움을 찾으려는 서툰 걸음이란 걸 택배기사는 눈치 챘을까. 불편한 몸으로 받아 쥐는 내 모습을 바라보며 혼자 웃기도 했다. 그 사이 복사뼈는 사근사근 아물어가고 있었다.

언젠가 친구와 재래시장을 간 적이 있다. 친구는 눈으로 보고 흥정하는 맛이라는데 예전처럼 기대이상의 덤도 없고 출처가 불투명한 제품이 많다고 고개를 가로젓곤 한다. 단지 재래시장에 가면 유년시절이 떠오른다. 어머니를 따라 시장가는 것을 좋아했다. 고무줄놀이를 마다하곤 엄마 치맛자락을 붙잡으면 처음엔 따라오지 못하게 손을 훠이 젓던 어머니는 건어물 상점에서 장을 보시며 오징어채 한 줌을 슬쩍 쥐어주신다. 혼나가며 따라 온 보람을 꾸역꾸역 느꼈다. 따라오지 못하게 할 땐 계모 같던 어머니가 반전되는 순간이다.

그러나 이젠 먼지라도 앉았을까 싶어 손이 가질 않는다. 시끄러운 시장 통과 물이 흥건한 바닥이 이미 내 성향에서 벗어나 있다. 믿을 수 있는 통신망과 얼굴에 파운데이션을 두드리며 시간 절약이 되는 홈쇼핑이 내겐 안성맞춤이다.

새로운 소비 형태인 홈쇼핑은 바로 지금이 아니면 누릴 수 없는 것처럼 많은 혜택을 갖고 방송중이다. 박진감 있는 프로를 보며 그동안 구매하고 싶었는데 기회가 없던 제품이 채널을 고정시키고 머뭇거리게 만든다. 이것도 지나온 시절 내가 여러 번 놓친 그런 특별한 기회인가 싶은 비약까지 하게 한다. 화면 옆으로 줄어드는 구매시간에 덩달아 심장박동 수는 빨라지고 쇼 호스트의 후회할 것이라는 은근한 협박에 수화기를 째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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