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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O칼럼]김미경"원칙과 소신의 갈등"

 

우연히 카카오톡을 열어볼 기회가 있어 휴대전화를 조작하고 있을 때 첫 머리에 올려진 이름이 보였다. 3년 전쯤이었던가. 법원에서 조정과 상담을 겸한 의뢰가 있어 조정했던 분이다. 아마도 이혼소송에 따른 재산분할과 양육비, 면접교섭과 관련한 조정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대략 2달 정도 이뤄졌던 짧지 않은 기간이어서 본의 아니게 이름과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당사자들과 시간을 맞추는 등 개인정보가 오고갔던 터였다.

조정 이후 전화번호가 삭제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우연히 첫 번째 등록되어 있던 이름에는, 길게 문장으로 표현된 말풍선에 “오늘 ○○형을 다시는 볼 수 없는 곳으로 보내드리고 왔습니다. 형의 마지막을 함께…”라고 쓰여 있었다. 문장을 다시 읽어 보았다. 가슴이 내려앉는 말이었다.

당시 조정과 상담과정에서도 남편이 특히 불안했던 마음이 많았는데 결국 일이 벌어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에는 최선을 다해 두 사람이 건강하게 헤어지는 준비를 할 수 있도록 한다는 마음이었고, 특별히 이 사건을 부탁했던 판사님도 그런 사안을 주의 깊게 주문했기 때문에 기억이 지금도 생생했다.

해서 여러 차례 이어지는 조정의 과정은 다른 분들에 비해 부부가 함께 했던 결혼생활과 관련하여 시시콜콜한 내용까지도 알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아내였던 분은 남편의 무능력에 심한 혐오감을 드러냈고, 남편은 매사에 자기이해에 밝았던 아내를 숨막혀해 했다. 당사자들은 조정과 상담을 넘나들며 서로를 이해하는 기회도 가졌지만 상대방에 대한 견고한 생각을 확인하며 답답함과 헤어질 수밖에 없다는 자기합리화를 굳히는 계기가 됐다.

부부는 자신이 생각하는 원칙과 소신에 대한 ‘다름’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법적인 요건과 절차를 가져야 하는 자녀의 면접교섭과 관련하여서도, 평일과 주말 등 일을 해야만 하는 남편에 대해, 이해하기보다는 아이를 제대로 면접교섭하지 않음을 질타했다. 이 과정은 다시 남편의 무능을 일깨우고 비난으로 이어졌다. 부정적인 고리를 끊어내기가 쉽지 않았다. 이어지는 조정과정에서 아내는 어려서부터 무능한 아버지에 의해 어머니가 생활 전선에서 고생해야 했고, 자신은 희생양이었다고 이야기했다. 때문에 남편은 아내의 친정아버지 몫까지 감내하는 결혼생활을 하였던 것이다.

결혼기간 내내 아내의 대우에 남편은 불만스러워 했다. 모두가 능력 있는 남편일 수는 없다며 때때로 아내에게 따졌지만 아내는 인정하지 않았다. 남편은 요지부동인 아내에게 마지막 일격의 말을 던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럼 너는 내가 없어져 버리면 좋겠냐’고 했다. 아내는 ‘당신이 꺼져 버리든, 없어져 버리든 관심이 없고, 다만 면접교섭 시간과 양육비를 제대로 철저하게 지켜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아내는 성장과정의 어려움까지도 결혼생활에서 보장 받고 싶었으나 그럴수록 남편은 더욱 무능의 나락으로 떨어진다며, 더 이상 살 수 없음을 호소했다. 헤어지는 과정은 냉정했다. 기거하는 집도 아내 쪽의 도움으로 마련되었던 관계로 이혼 이후 남편은 기거할 곳도 마땅치 않았다. 시댁 쪽도 아이들을 키워줄 수 있는 상황도 안 되고, 본가로 들어갈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다. 이혼 이후에는 더욱 막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알면서도 아내는 계속하여 남편을 압박했다.

해서 우선 남편도 살아야 아이들을 돌볼 수 있지 않느냐는 말로 남편에게 힘의 균형을 실어 주었지만, 아이를 키울 수 없다는 남편의 말에 아내는 마지못해 3년간을 맡아 키우겠다는 결론과 함께 양육비와 면접교섭을 요구했던 터였다. 아마도 최근의 시점이 조정내용에 포함됐던 시기였으리라. 당시의 상황이 머리를 스치며 결국 우려했던 상황이 왔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가슴이 아려왔다. 여러 날을 늦은 밤까지 상담과 조정을 통해 의견을 모았던 부부였는데…. 끝나는 날도 추운 겨울밤 지친 몸으로 연신 고맙다고 인사하는 남편의 등을 돌아보며 헤어졌는데, 결국 아내가 세운 원칙을 남편이 넘어가지 못했나 보다.

아무쪼록 ‘하늘’에서 편안히 기거하기를 바라면서, 친구목록에서 이름을 삭제했다. ‘무능한 것이 아니라 아직 기회가 오지 않았다’며 소신을 폈던, 3년 전의 그 당사자를 위해 향 하나를 살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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