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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n쉼]김창우"신라의 달밤"

 

일본의 전통연극 <노>(能)의 이론과 실제를 정립한 제아미(世阿彌 1363~1424)는 배우가 도달한 경지를 9단계로 분류한 바 있다. 운동으로 치면 갓 검은 띠를 딴 초단에 해당되는 배우는 다섯 가지 재주를 가진 다람쥐에 비유하고 있다. 나무를 기어오를 수 있고, 물속에서 헤엄칠 줄 알며, 나무에 구멍을 뚫을 줄 알고, 나뭇가지 사이를 날아다니고, 땅위를 걸어 다닐 수 있는 재주를 가진 것이다. 그러나 다람쥐는 자신이 사는 자연의 좁은 경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즉 다람쥐급 배우의 연기는 세련된 동작이 결여되어 있고, 거칠고 무딘 수준에 머무르고 만다.

4단 배우의 연기는 석양에 붉게 물든 산봉우리처럼, 또 골짜기에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안개처럼 유려하고 아름다운 연기를 보여준다. 고단자급에 속하는 7단 배우의 경지는 한가롭고 여유 있는 꽃(閑花風)이라 칭하면서, 은그릇에 쌓이는 흰 눈에 비유했고, 8단 배우는 깊이 있고 그윽한 꽃(寵深花風)으로, 만산이 눈에 덮였으나 오직 희지 않은 한 봉우리에 비유하였다. 최고수인 9단 배우는 오묘한 꽃(妙花風)이라 불렀는데, 그 비유에는 놀랍게도 우리 통일신라가 언급되고 있다. 제아미는 최고의 배우가 도달한 경지를 “신라의 한밤중은 대낮과 같이 밝다”라고 비유하고 있다.

처음 이 구절을 읽었을 때의 흥분감을 필자는 아직도 잊을 수 없으며, 우리 조상들의 빛난 얼에 대한 가슴 뿌듯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음을 고백하고자 한다. 오색찬란한 신라의 예술은 이웃나라 예술가에게 이렇게 인용될 정도로 훌륭했었던가?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신라인들이 백제와 고구려의 예술양식을 배척하지 않고 오히려 받아들임으로써 훌륭한 신라의 예술문화를 꽃 피울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옛날 서라벌을 비추던 보름달은 우리들에게 넌지시 묻고 있는 것 같다. “우리들은 이만큼 이룩하고 물려주었다. 너희들은 얼마나 더 발전시킨 모습으로 물려주려 하느냐?” 연극에 관한한 달님의 질문에 소신껏 대답할 자신이 없음을 필자는 솔직히 고백하고 싶다.

보잘 것 없는 천민과 아전 나부랭이들의 하찮은 놀이에 불과했던 우리의 전통 인형극과 탈춤을 새롭게 조명하고 현대적 수용을 시작한 지도 이제 어언 30년이 훌쩍 넘었다. 일본과 중국의 연극인들은 한국의 ‘마당극’처럼 전통의 현대적 수용을 시도한 연극이 자신들에게는 없음을 토로하기도 한다. 그러나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볼 것은 과연 우리들이 전통극의 진면목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탈춤의 특징은 지배층에 대한 저항과 조롱에 그치지 않고 자신들의 추한 모습까지도 가차 없이 드러내는 자기비판의 측면이다.

일생의 반려자인 남편에게 버림받고 끝내 죽음에 이르는 할멈, 노장과 양반에 대한 조롱은 결국 조롱으로 끝날 뿐 아무런 결말도 없으며, 취바리와 결합한 소무의 삶이, 폭력적 남존여비의 사회에서 걷게 될 길은 다분히 부정적일 뿐이다. 남사당패의 탈춤, 덧배기에 등장하는 홍동지는 일곱 동네 장사로 힘이 넘치지만 그 힘을 어디다 쓸지 모르는 반쪽영웅으로 설정되어 있다. 홍동지의 힘은 산받이의 조종을 받아야만 쓸 데를 찾게 된다. 이시미를 물리친 홍동지는 제물포로 가서 혼자서만 호의호식하는 반쪽영웅인 것이다. 아니 어쩌면 홍동지는 관객들의 실망을 겨냥하고 설정된 인물인지도 모른다.

민중연극의 세계적 경향인 민중의 승리라는 해피엔딩을 우리 전통극은 보여주지 않는다. 그러나 탈춤의 매력은 조그만 승리로 자기위안을 얻으니, 이 모든 탈춤 속의 조롱과 저항이 한갓 “허튼 짓” “허튼 지랄”임을 탈꾼들이 이미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탈춤의 해학과 풍자는 이처럼 굳건한 현실인식 위에서 펼쳐지는 비극의 희극적 풀이일 뿐이다. 최근의 마당극 작품들이 치열한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우리 민족이 당면한 과제들을 정면으로 다루지 않고 있는 경향은, 전통의 올바른 대물림에 대한 우려감을 자아내고 있다. 철저한 자기인식과 자기비판을 담아내게 될 때, 양적 팽창에서 질적 향상으로 한 걸음 내어딛게 될 것이며, 전통의 현대적 수용이란 과제도 실마리를 풀 수 있게 될 것이다. 화성의 보름달이 온 누리를 대낮처럼 밝히도록 이 땅의 광대들이여, 선조들의 전통을 계승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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